Posts

Showing posts from December, 2015

죽을 때 생을 선택하기

"이미 결정은 내려졌소, 로테. 나는 죽을 거요. 나는 이 편지를 낭만적 과장 없이 차분하게 쓰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다음날 아침에 말이오. 이 편지를 당신이 읽을 즈음이면 서늘한 무덤이 늘 고통에 시달리던 불행한 사내의 뻣뻣하게 남겨진 흔적들을 덮고 있을 거요." -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 중. 베르트르가 남긴 편지 일부. ( 한겨레21 [죽은 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에서 재인용)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건 행운일까? 이 편지와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경우에서든지 죽음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이것을 거부할 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혹은 그와 일란성 쌍둥이인 생을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의 핵심적인 표상은 (나로서는) 누군가에 대한 편지 쓰기일 것 같다. 죽기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나는 그 순간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 같다. 아직은, 살아있는 지금은 아직 기회가 있다. 죽을 때가 되어 실패한 것을 알게 되더라도, 현재는 아직 편지 쓰기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 그래서 산다.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20여 년만에 캐논 IXY 55 (익서스 50) 꺼내들고..

음알못의 오늘의 선곡

2026년 추석 열차표 예매 분투기

Earthseed에 대해 희망을 가질수록 커지는 파멸에의 확신 –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점점 배가 나와서.. 만 보 걷기를 재개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