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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seed에 대해 희망을 가질수록 커지는 파멸에의 확신 –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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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인류는 디스토피아를 직면할 것이며, 이 책과 전작에서 너무도 실감나게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이 씌여진 지 20년 후 마치 '재럿' 같은 이가 책에 씌여진 그대로 MAGA를 외치게 될 줄은 저자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미셸 오바마의 연설 중 "Do something."도 뭔가를 연상하게 한다. 연작의 첫 시작은 2024년부터이며 지금 현재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경고이며, 지금 당장 뭐라도 하라는 촉구이다. 1. 이 책은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멸망이 예정된 인류(정확히는 멸망이 예정된 문명, 인류애)에게 어떤 구원책을 제시한다. 로런 올라미나가 볼 때 인류는 지구에서는 더이상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으며, 그것은 기후 변화, 경제 등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 마음, 사상적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류가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지 검토해보면, 그것은 새로운 종교 운동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 그 종교의 이름은 Earthseed(지구종)이다. 이 종교의 주요 교리는 "변화가 곧 하느님이다.", "숙명은 별들 사이에 뿌리내리는 것이다."으로서 로런은 이를 수없이 변주하면서 반복하고 포교하려 애쓴다. 나는 이쯤에서 이 종교가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 당연한 진리를 다양한 시적 표현으로 변주하면서, 동시에 아주 유아적이지만 아름다운, 아주 비현실적이지만 꿈꾸듯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지구 탈출'이라는 '사명' 하나를 심어 넣은 케이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황당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말하는 사람이 매력적이고 정말 열정적으로 포교한다면 거부할 이유는 점차 줄어들게 된다. 이 책은 새로운 종교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은 아주 맹탕인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불굴의 의지로 사람들에게 종교로서 뿌리내리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회고록이다. 2. 그런데 이제 되돌아보면 이 책의 주제는 ...

파멸해가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 –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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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현실적인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무정부 약탈 사회로 진입 중인 있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영웅 서사가 아닌, 일반 대중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전반부엔 멸망 직전의 세상을 헤쳐나가야만 하는 인물들의 절망감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후반부엔 액션 위주로 흘러가서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는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우리의 미래 중 한가지 가능성을 잘 표현한 것 같다. 한편으로 이 책은 새로운 종교의 탄생 신화를 보여준다. 인류가 쌓아올린 가치관이 무너지고 절망적인 원시 종족으로 퇴화하고 있는 인간종에 맞서 '더 나은 삶을 찾는 안간힘'이 "지구종"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낳는다. 주인공 로런의 성장 일기이면서 또 그가 어떻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종교적 공동체를 만들어가는지 보여주는 일기라는 점에서 흥미로왔다. 이런 하루하루의 생존 일기에서 작가는 소멸해가는 인류 문명을 되살릴 길은 순수한 종교 혹은 영적인 결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첫 장면은 2024년 7월 20일이다. 이 책을 읽은 2024년 9월 현재 세상의 모습이 책에 나온 장면 중 일부를 이미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끔찍한 기분이 든다. 아래는 이 책의 문장들. "너 정말로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다고 믿는 거냐?" 아빠가 물었다. 나는 정말이지 느닷없이, 하마터면 울음을 터뜨릴 뻔 했다. 온 힘을 다해 울음을 참았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뇨, 종말을 맞는 건 아빠의 세상일 거예요. (109P) "지금은 숙명에 집중해서 그 토대, 지구종 공동체를 다질 시기죠. (..) '지구종의 숙명은 별들 사이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아니면 잿더미 속에 내리게 되겠죠." 나는 불탄 자리 쪽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트래비스는 내 말을 경청했다. 전 재산을 배낭 하나에 담아 메고 아무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로스앤젤레스...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에 대한 상식적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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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유명세를 익히 알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에 대해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읽기를 계속하면 할수록 이 주장에 대한 실망이 점점 커짐을 느꼈다. 현란한 말솜씨 뒤에 숨겨진 불쾌함은 바로 환원주의를 활용한 편향적 주장과 논리적 비약 때문이었다. 1. "인류의 새로운 의제"에서 다루었던 인류가 불멸,행복,신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해 이후 서술에서 제대로 심화하지 않는다. 그냥 1장이 별도의 예측이다. 마지막 10, 11장에서 기술 인본주의와 데이터교란 것을 서술하는데 이 부분은 기술 만능주의에 따른 예측 이상,이하도 아니다. 사실 1, 10, 11장 모두가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예상되는 단순한 미래상을 상상한 것일 뿐이다. 실망스럽게도 저자 본인이 주야장천 주장했던 인류만의 독특한 특성 - 유연한 대규모 집단으로서 갖는 사회적 의미 체계의 변화에 대한 숙고의 흔적은 하나도 없다. 사실 그가 말하는 상상 속 이야기의 힘, 상호주관적 연결망의 확대로 인해 농업혁명을 거쳐 인류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흥미로운 통찰을 주었다. (218~219쪽) 그런데 결론은 그저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으니 인류는 더이상 의미 체계를 추구하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즉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는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 뿐이다. 2. 유발 하라리는 인문학적 주장과 과학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를 오가면서 읽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생명과학은, 개인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생화학적 알고리즘들의 집합이 지어낸 허구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자유주의를 뿌리째 뒤흔든다. (..) 현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인생의 의미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서 나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둘 다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 418쪽 유발 하라리는 7장에서 근대에 들어서 인류에게 '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소멸했고 인간이 주인공인 '인본주의...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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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종전 후에야 이전의 다른 나라들과의 조약(을사늑약 등)이 무효화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은 언뜻 그런가 할 법 하지만 간교한 말장난이다. 그렇다면 해방 전까지는 우리 조상들이 일본 국적으로 살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일본이 실효적으로 우리 땅을 점령했었으니 그 땐 사실 일본 땅이었었지"라고 말하는 논리의 악마성을 보라. 강도가 우리 집을 차지하고 있으면 그 집의 주인이 되는가?, 아니면 불법 점거인가? 이 말장난은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는 그 실효 지배가 사라졌을 때부터 무효가 되는 게 아니라 국제법적으로 불법이며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이해해야 논파할 수 있다. 또 일제 강점기 시기를 단순히 '새 나라 세우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과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이 왜 그렇게 작성될 수밖에 없었는지, 뭐가 문제였는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 * * 유럽에서는 나치의 폐해 등 때문에 '민족주의'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또 대만인들은 식민 피지배 기간이 300년이나 되기 때문인지 일제의 식민 통치를 그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국제적 인식과 지원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요즘 준동하는 숭일친일파들의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민족주의적 감성 만으로는 외국인들을 이해시키기 어려운 점이 있다. 정말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역사에 대해 논리에 기반한 가치관을 스스로 앞서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부 동의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역사를 한 쪽 측면만이 아니라 다면적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중심을 유지해야 함을, 그러기 위해서는 디테일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우리는 더 디테일해야 한다. 2024.08.21

[한국이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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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술술 읽혀 하루만에 다 읽었다. 현대를 사는 청년들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주인공 계나는 맞지 않는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수많은 고생을 하면서도 조금이나마 한국보다는 나은 삶을 사는 주체적인 인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미에 계나가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라고 선언한다 해도, 쉽게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계나의 한국, 호주에서의 소외와 성취, 희망을 높게 인정함과 동시에, 유한자로서 우리 각자에게 불행과 행복은 동시에 온다는 것(결국 불행, 행복은 같은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봄직할 것 같다. 계나는 장소가 어디든지 겪는 모든 경험에서 맞지 않는 점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의 행복은 매번 맞지 않는 것을 찾아내서 탈출할 때에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거창한 성취, 꿈 또는 불행 없이 '그냥' 사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어쨌든 한국 사회의 물질만능, 차별/혐오 문화는 답이 없다.) 2024.08.14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사랑은 쇠사슬과도 같다

"사랑해요, 엄마." 홀리는 전화를 끊는다. 진심일까? 그렇다. 사라진 것은 좋아하는 마음이고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사랑은 양쪽에 족쇄가 달린 쇠사슬과도 같다. 그녀가 그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족쇄를 잘라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샬럿 기브니는 홀리의 어린 시절 내내 남들보다 열등한 아이라고 가르쳤다. 이제 그녀에게는 나름의 인생이 생겼고 행복할 때가 많다. 만약 어머니와 절연한다면 그녀는 전보다 못한 인물이 될 것이다. 나는 전보다 못한 인물이 되고 싶지 않아. - [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황금가지) 348쪽 (일부 문장 중략)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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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늦은 매불쇼를 보다가 김민기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부른 아침이슬 두 버전(1971년, 1993년)을 다시 들어보았다. 너무 좋았다. 그의 노래는 내 젊은 시절에 늘 함께 했던 노래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도 그랬지만 오늘 문득 내 생명을 지탱해 오던 일부분이 소실되는 느낌을 받았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일면식도 없지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민기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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