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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2010

칭찬의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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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할 게 아니라, 격려를 해야 하는 거네요. 칭찬 선물로 스티커를 주면 아이들은 책 읽는 것은 수단이고 스티커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군요. 칭찬을 받으면 아이들도 부담을 느껴 부정한 방법까지 동원하고, 어려운 것을 오히려 하지 않으려 하게되는군요. 평소 의아스러웠던 게 분명해진 느낌입니다. http://www.javapattern.info/364 (덧붙여 12/9) 지인이 EBS에서 방송하고 있는 내용중 일부라고 알려주셨어요. http://home.ebs.co.kr/school/index.html

오늘 아침 문득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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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문득 든 생각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반면에 컴퓨터는 완전한 존재이다. 이 때 완전하다는 말의 뜻은 정해진 규칙대로만 움직인다는 뜻이다. 인간이 설계해 둔 로직대로만 움직이지 변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부하로 인해 뻗는 그 순간에도 그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것이다. 그럼,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따르지 않고 행동하는가? 물론 아주 넓은 범위에서는 인간도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 태어나고 늙고 죽으며, 맨 몸으로 하늘을 날 수는 없다. 다만, 아주 미세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작은 범위에서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세상에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하고 싶은 것을 본업으로 삼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를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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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이 일에 치여서 정신 없으면서도 짬짬이 스코트 니어링의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를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머리 속은 니어링의 삶을 동경하면서 몸은 일을 하고 있는 것에서 발생하는 갈등입니다. 다시 말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죠. 반대로 니어링의 책을 읽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걱정이 꾹꾹 옆구리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에 책에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하고 싶은 것을 주된 일로 하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하지 싶습니다. 그런 경우 하고 싶은 것에서 취미로서의 즐거움은 덜 느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은 행복한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덧붙여) 사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만큼 저보다는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겠지요(그러한 삶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개척한 경우라면). 스코트 니어링의 책들은 (아직 읽고 있지만)<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을 포함해서 그러한 삶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0/08/25 후설) 스코트 니어링의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앞서 읽었던 <조화로운 삶>도 꼼꼼히 읽지 못했구요. 책이 재미 없어인지, 아니면 나의 현실과 맞지 않아서인지..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이 귀농이라든지 니어링처럼 끊임없이 올바름과 원칙을 추구하며 살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겠죠. 또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그러한 노력을 같이 할 수 있는 동지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

[백야행] - 료와 유키호는 지옥에서나마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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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최근 가장 즐겨 읽는 문학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것은 영화로 봤습니다. 다음으로 [성녀의 구제]는 소설로 읽었는데 본격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빠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녀의 구제]도 [백야행]( 알라딘 , YES24 , 인터파크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범죄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던 점이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재미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붉은 손가락]을 읽었고, 이제 그 유명한(?) [백야행]을 읽었습니다.

[도올의 도마복음 한글역주]를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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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 알라딘 , YES24 , 인터파크 )를 읽었습니다. 총 3권으로 되어 있고, 1권은 책 제목이 <도마복음이야기 : 이집트 이스라엘 초기기독교 성지순례기>로 되어 있습니다. 1권을 읽은 것은 6월 중이었고, 나머지 2권은 2주일에 걸쳐 읽었으나 3권은 꼼꼼히 읽지는 못했습니다. 도올이 말하길 도마복음에 기술된 예수의 말은 공관복음 4서보다도 더 진실한 살아있는 예수의 육성에 가깝다고 합니다. 읽어 본 제 소감은 (제가 예수를 종교적으로 '믿지' 않는 점을 미리 밝혀야하겠습니다) 예수가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라면, 과연 도마복음에서 예수가 한 말이 맞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도마복음이 예수의 육성이든 아니든 관계 없이 거기에 씌여진 말은 깊은 사색을 하게 해줍니다.

[예수전] - 꿈꾸길 중단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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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우리에게 당부한다. 현실에 대한 비평에는 능하지만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는 한없이 무력한, 여전히 좌파를 자처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신념과 벅찬 희망이 아니라 지독한 우울과 무력감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믿음을 가지세요.'

색다른 스릴러, [빅 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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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The Big Picture : 알라딘 , Yes24 , 인터파크 )는 기본적으로 스릴러입니다. 소설의 구성이 주로 행위나 대사로 이루어진 편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독백이나 마음 상태에 대한 설명에도 치밀하게 할애가 되어 있는 편입니다. 벤 혹은 게리가 어떻게 이런 상태(살인, 완전히 다른 삶 살기, 중요하게는 드디어 꿈꾸던 사진가가 되는 과정 등)에 이르렀는가에 대해서 읽는 사람은 충분히 공감하게 됩니다.

[스코트 니어링 평전] - 타협하지 않고 이론과 삶이 일치할 수 있음을 증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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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 니어링 평전] ( YES24 , 알라딘 , 인터파크 ) 스코트 니어링의 20세기 100년의 삶이 현재 내가 처한 삶의 고민과 전혀 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참 신기합니다. 그만큼 모든 인간의 올바른 삶이 비슷한 색채를 띠는 것일까요? 하지만, 20세기 초반과 달리 더이상 사람들은 니어링이 자연으로 돌아간 그 자체만 관심이 있지 니어링이 말하는 것에는 관심이 덜해졌습니다. 나이 아흔다섯에 이르러 니어링은 이렇게 말했다. “한 친구는 내가 말하는 것들이 그 전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참 유감스럽다.”

노회찬의 3%가 민주당을 살렸을지는 몰라도..

"아깝다! 노회찬의 3%" 누리꾼들 갑론을박 - 한겨레 기사 노회찬의 3%가 14만 표로 오세훈, 한명숙의 2만6천표를 커버할 수 있는 표였다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노 후보가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큰 차이를 만들어낸 잘못을 묻는 누리꾼들도 적잖다. 한 누리꾼은 “한명숙과 노회찬의 가치관이나 공약들이 그리도 달랐는가”라고 물으며 “작은 차이도 용납하지 못하는 진보가 무슨 진보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따졌다.”라고 합니다. 맞는 말 같습니다. 게다가 저는 진보신당, 혹은 노회찬 후보의 정책도 잘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민주당 후보가 아닌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것에 대해 미안해야 할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인 거죠. 하지만…,

"비판적 지지론", 내지 "자아 배신"

제발 이번만은 자기 자신의 소신대로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위의 "사표 심리", "표를 분산시키는 배신자(?)"라는 억압에 굴하지 말고 말입니다. 어차피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든 서민들의 생활이 크게 변하는 거 아닌 거 같고, 더 먼 미래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기업 매각부터 국외 파병까지 거의 모든 반민중적 정책을 지지 내지 방관해온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진보 정당으로서는 일종의 "자기 부정"에 가깝습니다. 진보 정당의 힘과 슬기란 한국을 신자유주의화시킨 사람들에게 들러리 서줄 정도 밖에 안된다면 그러면 진보정당을 굳이 할 필요는 뭐가 있겠습니까? 개인으로서의 “비지”는 결국 일종의 정치적인 "자아 포기"가 아닌가 싶어요. 정치란 꼭 권력을 획득하는 장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치라는 장에서는 사람마다 그 소신, 그 생각을 외면화시켜 타자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죠. 그러한 측면에서는 정치의 장이란 대자적 자아 형성의 장이기도 해요.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 전혀 맞지 않은 정치인을 오로지 "사표 심리" 등 정치공학적 고려 때문에 찍는다는 것은 결국 자율적인 자아 형성 및 외면화에 대한 스스로의 포기 정도입니다. 자율적 개인으로 살지 않겠단 이야기죠. - 박노자님 [ "비지론", 내지 "자아 배신" ] 중에서 (덧붙여) MB가 전면에 나선 북풍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지만, 이럴 때일 수록 더욱더 박노자님 말씀처럼 자기 정체성, 즉 무엇이 진정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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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고 나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면서 깨닫는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깨닫고 나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의 완성이 곧 깨달음이다. 즉 행 속에 깨달음이 있는 것이죠." - 법정  (2010.5.21 MBC 스페셜 [법정 –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법정스님의 육성) (사진출처 : http://www.newsen.com/news_view.php?news_uid=450541 ) 될 수 있으면 눈과 귀에 방해물이 적은 고요하고 깨끗한 방에서, 가볍고 느슨한 옷으로, 방석을 깔고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는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우선은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숨을 고르게 쉬면서 귀를 기울인다. 무슨 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요를 지켜보라는 뜻이다. - 법정, [오두막 편지] 85쪽. 사회 깨우던 '죽비소리', 법정 스님을 떠나 보내며 에서 재인용.

부시정권에서 자본주의가 본색을 드러내다 -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Capitalism: A Love Sto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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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의 < 자본주의 : 러브 스토리 >를 봤습니다. 이론적인 것이 아닌 구체적인 사례와 인터뷰를 통해 자본주의, 정확하게는 미국 자본주의의 해악성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로저와 나> 이후 20년을 결산하는 영화라고 하는데.. 뭐 볼 만 했습니다. 마이클 무어의 다른 영화에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마찬가지로 지루하지는 않았던 것 같구요.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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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오늘은 5.18 광주민중항쟁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종일 일에 치여 되새길 기회 없다가 퇴근해 집에 와서야 허지웅님 블로그 글 [ 5월 18일의 기록 ]에서 되새기게 되는군요. 물론 오늘이 5.18 30주년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대학 다니면서 광주도 갔었고 돌도 던져 보았지만, 지금은 현실을 핑계로 몸은 잘 움직이지 못하지만, 후일을 위해 마음만은 그 날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서.. 그리고 나서 김규항님의 [ 광주의 정신, 민주주의의 정신 ](2005년 5.18 연세대 강연문)을 읽었습니다. “광주의 정신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장 실현가능한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우리가 인간임을 진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아니 설사 내 생애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신념을 버려선 안 됩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근대라는 세상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신념을 버리지 않은 아주 적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대의 사람들에게서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바로 그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 깨지고 또 깨지면서 결국 중세는 무너집니다. 우리의 암흑도 그렇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입니다." ... ... 오늘 퇴근하면서 뉴스에서 " 상위 10% 월소득 사상 첫 1천만원 돌파 "라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 18일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상위 10%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 5년간 254만원 증가한 반면, 하위 10%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7만원 증가에 그쳤다. "라고 하네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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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의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나고, 정말 이상적인 삶의 지침으로 삼아도 될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삶의 동반자 스코트 니어링의 전기가 책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보았지만, 선뜻 사서 읽지 못했습니다. 도저희 따라할 수 없는 머리 속의 삶이 나의 현재 삶에 오히려 고통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나중에 언젠가 읽었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을 정리라도 한번 해봐야 하겠습니다. (덧붙여. 10.07.07) 이 책을 다시 읽지 못하고 대신에 <스코트 니어링 평전>을 읽었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두 분의 니어링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스코트 니어링 평전>을 읽고 쓴 글 : 스코트 니어링 – 타협하지 않고 이론과 삶이 일치할 수 있음을 증명하다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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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를 다 읽었습니다. 전체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처음에는 나도 별 수 없는 “과거 한 때 변혁을 꿈꾸었으나, 이제는 신자유주의에 물들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괴감이랄까 복잡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읽다 보니 조금씩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글 부분에서 말입니다. 김규항 씨에 대한 마음도 처음에는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다는 얘기는 하나도 없고 너무 원론적인 거 아냐? 라는 반감에서, 차츰 이 분도 많이 노력하고 있구나, 참 솔직한 분이구나 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김규항이 그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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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실에 분노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 삶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 들어가는 말, 지승호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면서 진보적이지 않은 게 우리를 미궁으로 몰아넣는다.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최근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 - "나 자신의 변화"를 가장 핵심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뛰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와 안정된 가정을 위해 뛰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이 중 어떤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더욱 잘 그릴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이라고도 합니다. 즉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 또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뛸 것입니다. 그러나 안정된 가정을 위해 뛰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안정된 삶을 위해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을 보며 살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조금씩 그 꿈을 이루어간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영향력이 전달되게 됩니다. 그 영향력은 매우 긍정적이기 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도 변화의 삶을 전해 주게 되지요. - chocoach님 블로그 글 <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중에서 일부 인용 ( 라이프해커님 버즈 에서 알게 됨)

글의 힘?

글은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2개의 조금 힘든 글을 쓰고 나서 자고 일어나, 오늘 아침 아이를 혼내지 않았고, 아이 엄마와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이나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군요. 어제 쓰여진 글은 내가 쓴 글이지만, 쓰고 나면 내 소유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내게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글쓰기는 나를 현실로부터 좀더 자유로와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김규항 [나의 삶, 나의 글]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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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지승호씨와 함께 펴낸 29일 김규항 씨가 <나의 삶, 나의 글>이란 주제로 강연회를 합니다. (강연회 안내/신청 페이지 : http://blog.yes24.com/document/2190250 )

나의 정치성향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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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서 < 당신의 정치인은 어디에 있나요? > 특집을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번 읽고 보고 말았는데 오늘 lottographer님이 쓰신 글 에서 자기의 정치 성향을 테스트해보는 링크를 발견해서 나도 한번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생명 유지 본능의 숭고함? - 조정래 선생 말씀을 생각하며

얼마 전 TV에서 낭독의 발견을 청취할 기회가 있었는데, 조정래,장사익 선생님이 나오셨던 시간이었어요. 지금 찾아보니 2010년 1월 26일에 방송되었군요. ( KBS 낭독의 발견 ) 조정래 선생께서 "요즘 손주들 때문에 느끼는 감회가 '우주적 진화의 결과로 대를 이어 핏줄을 이어가려는 생명의 본능에 대해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 라는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정확하진 않습니다만, 그렇게 기억됩니다). 어제 문득 그 말씀이 기억나더군요. 그만큼 손주들이 사랑스럽다는 얘기신데, 제겐 그 말씀하신 표현이 남달라 보였습니다.

원어민 영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

오마이뉴스 책동네 RSS를 구독하면 정말 좋은 글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책을 직접 사서 읽는 게 도리이겠지만, 이렇게나마 조금씩 좋은 글을 읽고 일부만 옮겨 적어 두고 되새기는 게 아주 나쁜 허물은 아닐 것이라 믿어요. 오늘은 그중에 <원어민 영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는 글이 확 와 닿았습니다. 은연 중에 우리 아이들도 유학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던 차에 계속 생각을 해봐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글쓴이 말씀대로 반기문 총장님이 계시잖아요. ㅎㅎ.. 나중에 반 총장 영어 공부한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 두려움으로 가득 찬 상태로 아이를 사랑하게 된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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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돈 있는 이들은 자식을 유학을 보내고, 조금 있는 이들은 이사를 해서 좋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모인 학교에 다니게 하고, 평범한 부모들은 애써서 학원과 과외비용을 지원하고, 돈이 없는 부모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지금의 대안인가요. 대안이라고 등장하는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 역시 돈에 의한 순위가 정해지고 계급이 세습됩니다. 돈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지금의 경쟁시스템에서 상위 그룹에 들기는 힘들죠. 알면서도 끌려가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선택할 방법이 있을까요. 돈이 없다면 선택의 폭이 크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대안학교가 떠오릅니다. 학교가 초기의 인성과 사고의 ‘대안’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중평입니다. 게다가 학비도 만만치 않아서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의 경제력이 아니면 다니기 힘든 ‘귀족학교’라는 비아냥거림도 듣습니다.

내 마음을 살리는 말 한 마디와 책

제가 쓴 글 한 줄이 많은 사람한테 읽힐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제가 쓴 글 한 줄을 많은 사람한테 읽혀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아 주면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안 읽어 준다 하여도 저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제 글을 꾸준히 되읽으면서 어제와 오늘과 이듬날이 한결같이 곧고 고우며 맑을 수 있도록 가다듬을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남을 일깨우는 글이 될 수 있습니다만, 남을 일깨우기 앞서 저 스스로를 일깨우는 글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를 가르쳐 주는 고마운 책을 수없이 찾아 읽든, 저를 가르쳐 주는 고마운 스승을 수없이 찾아가서 말씀을 여쭈든, 저를 가르쳐 주는 고마운 일거리를 찾아 바지런히 땀흘리며 일하든,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하고 어울리더라도 저 스스로 깨달은 이야기를 글 한 꼭지에 차곡차곡 담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저 스스로 깨달은 이야기를 담는 글이고, 저 스스로 깨달은 이야기를 저 스스로 잊지 않고 되새기고자 읽는 글이라고 느낍니다. - 최종규님의 [ 내 마음을 살리는 말 한 마디와 책 ] 중에서 ( 오마이뉴스 책동네 ) 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 최종규님 블로그 , 블로그2

어린 시절에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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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뒤 내 마음 속에 떠오른 첫 마디는 "부럽다"였다. 독일의 교육 현실이 우리나라와 너무 달라서 부러웠고, 지은이가 나와 다르게 독일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행운(?)을 가진 것이 부러웠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독일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 자녀를 키우는 것에서 안 좋은 점을 일부러 찾아내려는 마음, 부정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한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과 마음가짐은 무엇이어야 하느냐는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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