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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2015

죽을 때 생을 선택하기

"이미 결정은 내려졌소, 로테. 나는 죽을 거요. 나는 이 편지를 낭만적 과장 없이 차분하게 쓰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다음날 아침에 말이오. 이 편지를 당신이 읽을 즈음이면 서늘한 무덤이 늘 고통에 시달리던 불행한 사내의 뻣뻣하게 남겨진 흔적들을 덮고 있을 거요." -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 중. 베르트르가 남긴 편지 일부. ( 한겨레21 [죽은 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에서 재인용)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건 행운일까? 이 편지와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경우에서든지 죽음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이것을 거부할 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그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혹은 그와 일란성 쌍둥이인 생을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의 핵심적인 표상은 (나로서는) 누군가에 대한 편지 쓰기일 것 같다. 죽기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나는 그 순간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 같다. 아직은, 살아있는 지금은 아직 기회가 있다. 죽을 때가 되어 실패한 것을 알게 되더라도, 현재는 아직 편지 쓰기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다. 그래서 산다.

의미를 가진 시간이란

이 시각. 영화 보고 집에 가는 버스 안.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힘들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 무엇이 내 안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것일까? 그건 시간인 것만 같다. 의미를 둬야만 의미가 생기는 시간은 대체 무슨 시간일까?

살아있을 때 죽음을 끌어안아야 할 이유 - [죽음의 성스러운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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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힌두교도, 불교도, 중국인, 이집트인, 그리스인, 히브리인, 기독교도, 무슬림, 미국 인디언들의 죽음관이 있다.  이처럼 많은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죽음관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관통하는 무언가를 찾는 책이 [죽음의 성스러운 기술 - 세계 종교는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이다. [죽음의 성스러운 기술]은 일단 각 종교별로 또는 문화별로 죽음이 무엇인가, 장례의식, 죽음 이후의 세계, 구원 등에 대해 가진 관점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서는 죽음을 논하고자 한다면 각 종교의 창조 신화를 참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죽음은 창조와 구분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종교, 문화에 나타난 고유한 창조 신화의 특별함은 그 자체로 죽음에 대한 고유한 생각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뒤 이어지는 서술에서 그러한 세계 종교, 문화의 죽음관이 서로 차이보다 공통점이 있으며, 그것은 죽음을 단지 끝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고, 마치 하나의 연극이 시작되었다가 막을 내린 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지에 대해 검토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 현재 살아있는 내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살아서 삶을 영위하는 동안에 죽음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설득력있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은 게 약 7일가량 지나서 세부 내용은 가물거리지만, 종교들은 하나 같이 육체적인 죽음이 다가오기 이전에 정신적인 죽음을 겪기를 권유하고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처럼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육체적인 죽음 이전에 반드시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 자기만의 세계관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드시 다가올 육체적인 죽음이 과연 끝일까 아닐까라는 무의미한 사고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에서 항상 나의 죽음이 어떠한 모습일까를 상상하고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사색해야 할 것이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 ...

내 인생의 책, [데미안, 한 젊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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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정확히 언제였던지 몰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즈음에 읽었던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기억의 잔상으로도 어린 나이에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과 아브락사스라는 단어의 신비함이 주었던 영향은 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한다. 알은 세계이다. 새는 아브락사스라는 신에게로 날아간다."라는 문장은 어린 마음에 신비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브락사스라는 신에 대해 들은 바 없었고 카인의 표식에 대해 들은 바 없었던 나는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각인하였던 것 같다. (당시 읽은 책에는 "아브락사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얼마 뒤 영문이 Abraxas임을 알게 되고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나이가 들면서 [데미안]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갔지만(지금 다시 읽으니 아브락사스가 나온 일화 이후로는 거의 새로 읽는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가끔씩 그 책을 읽었다는 자긍심 비슷한 감정은 갖고 있었다. 최근 만 19년간 직장에서 해오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되었고 사무실도 옮기게 된 시점에 아이들을 위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이십여 권을 사면서 [데미안]도 샀고, 나는 여러 권 중 맨처음 이 책을 집어들게 되면서 30여 년만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놀랍게도(!) 어릴 때 읽었던 신선함이 그대로 와닿았고 어린 나이에 이해가 안되던 부분이 새롭게 이해되면서 이 이야기의 진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삶이 결국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주제가 가진 의미가 불혹을 넘긴 나이에 이해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나도 매번 새롭게 나를 찾는 길에 서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고 고마움을 느낀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그토록 힘들게 찾고 싶었던 "자아 찾기"라는 것은 어찌보면 성인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나 경험과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할 것이 바로 이 길이 아닌가 싶다. 또...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위해 태어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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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섬세하게 직조된 기쁨과 슬픔은 신성한 영혼을 위한 안성맞춤의 옷, 모든 비탄과 갈망 아래로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에서 - [강신주의 감정수업], 에필로그 다음 521쪽에서 재인용 - 2015. 6. 26. 8:54PM 교보문고 강남점 - Instagram: https://instagram.com/p/4huZlwMium - 위키백과: 윌리엄 블레이크

오늘 달이 참 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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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보니 어느새 어둠. 달은 노랗고 예뻤다. 여자는 달을 보며 말했다. "오래전 일본 소설가 하나가 쑥스러웠던지 'I love you'를 '오늘 달이 참 밝네요'라고 번역했대요." 남자는 귀엽다며 웃더니 "오늘 참 달이 밝네"라고 말했다. 여자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오늘 달이 참 밝네요." - 정현주, [다시, 사랑],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사랑은" (60-61쪽) 중에서 - Instagram: https://instagram.com/p/4XsTi5MiuT

결국

외로움을 온몸으로 겪으면 사리가 생길까? 생긴대로 버티다간 죽을 때까지 인연을 못찾는 게 아닐까? 어차피 껍데기 뿐일 관계라면 홀로 헤쳐가는 인생 모델도 좋지 않을까? 문제는 그러다보면 성욕만 남는다는 거지. 2015. 6. 24. 9:52 PM

뜨거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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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땀흘리며 걷다보면 온갖 "의미"가 잠시 물러난다. 열정, 꿈, 희망, 욕망, 성욕, 절망, 자기애, 살고싶거나 죽고싶음.. 기타등등.. 그렇게 없어진 채로 무한하거나 소멸되었으면.. 그러다가 컵라면이, 몸이 날 살렸다. - 첫 사진은 2015. 5. 5. 어린이대공원, 두번째 사진은 오늘 오후

빗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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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에 대한 그리움이 넘칠 때는 마음 속에서 그리움을 지우고 싶다. 가슴 속 외로움이 온 몸을 휘감을 때면 몸은 차라리 빗방울이 되어 흩어지고 싶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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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가벼운 공기, 썩은 똥으로 가득찬 뇌, 죽고 싶다는 생각, 모든 살아있는 속물들에 대한 환멸, 그럼에도 살아낼 거라고, 있지도 않는 "삶"이란 관념에 매달리는 영혼. 오늘 아침 나를 구성하는 구차한 것들이다. 오늘은 길바닥에 무지개가 비치지 않았거든. - Instagram :  https://instagram.com/p/4FolmEMigG/

Volcano - Damien 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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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cano Don't hold yourself like that You'll hurt your knees I kissed your mouth and back But that's all I need Don't build your world around volcanoes melt you down What I am to you is not real What I am to you you do not need What I am to you is not what you mean to me You give me miles and miles of mountains And I'll ask for the sea Don't throw yourself like that In front of me I kissed your mouth your back Is that all you need? Don't drag my love around volcanoes melt me down What I am to you is not real What I am to you you do not need What I am to you is not what you mean to me You give me miles and miles of mountains And I'll ask what I give to you Is just what I'm going through This is nothing new No no just another phase of finding what I really need Is what makes me bleed And like a new disease she's still too young to treat Like a distant tree Volcanoes melt me down She's still too young I kisse...

자발적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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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고난 다음날 북받치는 슬픔에 사랑을 느꼈다. 내 삶이 그와 다르지 않음에 아흔 살에 그에게 찾아온 사랑에 몸서리치도록 부럽다. 그때까지 자발적 외로움.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 내 속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 그때부터 알 수 없는 너를 외로워함과 오지 않을 미래를 사랑함이 동의어임을 깨닫는다. image :  plus.google.com/+500px/posts/FbVGj4R3Kba

명예를 선택하고 사랑에게 선택받다 - [적과 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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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생각할 때 두 가지 관념이 떠오른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과 강물처럼 흘러가는 사랑. 나는 강물의 흐름처럼 긴 시간동안 부딪치며 마모되며 이룩되는 사랑에 대해서는 회의를 갖고 있으므로 불꽃처럼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사랑도 일시적인 것으로 큰 가치를 두고 싶어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여기 [적과 흑]의 격렬한 사랑을 보자. 요즈음의 통속적인 삼각관계로서 바라볼만한 여지가 다분한 쥘리앵과 레날부인, 그리고 마틸드를 다 읽고 난 지금, 내 마음은 혼란스럽다. 그들의 사랑에 통속적인 점 이외에 별다른 점이 있는건가? 원래 쥘리앵은 가난한 계급의 아이로 당시 사회에 대한 불만과 출세에 대한 욕망이 뒤엉킨 복잡한 성정의 소유자이다. 거기에 덧붙여 당시 귀족과 성직자, 평민을 망라하고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인간 군중이 팽배하던 시절에 "능란하고 교활하지도 않고, 경멸받는 것을 몹시도 두려워하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실제 가능할까라는 의문은 둘째치고 왜 그는 그런 선택, 출세가 아닌 사랑을 선택했을까? 내 눈에 그의 선택은 결국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이야기에 19살에 처음 등장해 25살에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남은 생애 몇 달동안 그는 살아오면서 가장 강렬한 열정의 시간을 보낸다. 쥘리앵은 감옥에 있는 시간 동안 "늘 사랑에 빠져 지냈고, 그러는 동안에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레날 부인도 쥘리앵을 따라 "근심을 벗어 버리고 감미롭고 유쾌한 기분에 자신을 내맡기는" 시간을 보냈다. 얼핏 쥘리앵은 자기의 꿈, 출세하고 싶다는 꿈을 애초 생각한 바와는 다른 형태지만 결국 이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쥘리앵이 바랐던 출세 욕망이 사랑에 대한 욕망과 같은 수준의 것으로 이해될 때 그 사랑은 더이상 순수하지 않게 되는 딜레마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쥘리앵은 애초의 쥘리앵이 아닌 새로운 쥘리앵으...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 : 패러다임을 뒤흔든 논쟁의 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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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밑줄그은 문장은 이 책의 수많은 일화와 설명과 번쩍이는 생각들 중 아주 일부분일 뿐인 나만의 의미심장한 문장들이다. 읽은 소감은 그 아래에 간략하게 썼다.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 - 토비아스 휘르터, 막스 라우너 지금 / 알마 / 2013년 머리말 다중우주는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친 발상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500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며 더욱이 자기 축을 중심으로 자전도 한다는 생각을 미친 소리로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200년 뒤 이런 세계관은 누구나 익히 아는 교양이 되었으며, 오늘날 지구의 공전과 자전은 명백한 사실이다. -  11쪽 1장, 다중우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중우주이론은 인류가 품어온 가장 큰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를 풀어줄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존재에 관해서다. 빅뱅 이후 우주는 마치 별들, 은하계, 행성 그리고 인간을 차례차례 만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전자가 갖는 전하나 중력과 같은 자연상수(natural constant)가 약간만이라도 달랐다면 빅뱅 이후 원자나 별은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 우리의 고유한 우주는 빅뱅이 있고 나서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려고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하는 지적 능력을 갖는 인간을 이끌어내기까지 정확히 140억 년이 걸리는 자연법칙을 가졌다. 우리의 우주는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진 우주들의 바다에서 유일하게 생명 친화적인 섬이다. - 25-27쪽 하나의 새로운 과학 이론이 당대를 사로잡는 세계관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함께 작용해야만 한다. 토머스 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부터 1970년대에 아주 유명해진 개념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생각의 틀과 같다. 쿤이 보기에 과학의 발달은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식과 지식이 부단하게 쌓여 확장되는 게 아니라, 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른바 '표준...

외로움을 진지하게 맞아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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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진지하게 맞아들이세요 외로움을 맛볼 때 멀리 도망치기보다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낯선 손님이 아닌 정다운 친구로 외로움을 진지하게 맞아들이고 길들여가는 것이지요. 새 옷, 새 구두, 새 만년필도 편안한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선 한참을 길들여야 하듯이 처음엔 낯설었던 외로움도 나와 친숙해지면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닐 수 있습니다. 자신의 외로움을 누군가에게 선전하고 싶을 때 외로움을 잊으려고 쾌락에 탐닉하고 싶을 때. 바로 그 시간에 오히려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모습과 삶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는 슬기를 지녀야겠습니다. 외로움에 매여 사는 노예가 되지 않고 외로움을 다스리는 자유를 누릴 때 우리는 깊은 명상과 사색, 기쁨과 여유를 찾게 될 것입니다. - 이해인,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중 나는 위 시어 중 "외로움에 매여 사는 노예가 되지 않고 다스리는 자유를 누리라"라는 말이 크게 와닿음과 동시에 과연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언제쯤이나..

빈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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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자리. Empty existence. - 2015. 4. 25. by Whizz Xanadu​​ in Seoul. - Pre posted in Google+

2015년 5월, 잡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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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화장실에서, 길 가다가 문득 떠오른 상상, 잡생각을 떠오르는대로 적어둔 것을 모은 것이다. 2015. 5. 1. 9:26 PM - 원래 인간은 사물을 볼 때 이차원으로 본다. 삼차원은 정밀하게 계산된 이차원의 변형일 뿐이다. 진정한 삼차원은 대상을 움켜쥘 때 포옹할 때 느낄 수 있다. 우리 뇌는 그걸 기억하고 볼 때 적용하는 것이다. 2015. 5. 1. 9:31 PM - 수많은 인류의 위대한 축적이 현대에 이르는 사상 체계를 낳았다. 언제나 위대한 사상은 현실을 사는 범인과 약간 괴리를 갖고 있었다. 범약한 나는 대충 어느 사상이 내 입장에서 진리인 줄 알겠다. 하지만 범인으로서의 삶은 닿을 수 없는 사상과 괴리를 낳고 괴로움을 낳는다. 행복한 짧은 생은 간 데 없고 여전히 정답은 오리무중이다. 2015. 5. 10. 9:19 AM - 사람은 아니 생명은 누구나 죽는다. 근원적 차원에서 생명체에게 죽음은 거쳐가는 곳일지 몰라도 개별 생명체에게 그것은 종착지로 드러나고 있다. 삶은 간이역. 왜 물질 세계에서 이러한 한계를 가진 개별체로서의 생명이 생겨난 것일까? 거기엔 또 죽음엔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15. 5. 11. 9:12 AM - 진리에 대한 언술과 당위에 대한 말은 구분되어야 한다. 진리로부터 당위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 때 선택이 개입된다. 당위로부터 진리가 서술될 수도 있다. 예술이 그것이다. 2015. 5. 11. 11.27 AM - 자기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는 명제는 의미가 있다. 명제가 참임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명제는 부정됨으로써 자신이 단순한 참일 뿐만 아니라 어떤 숭고한 경지의 참임을 밝히게 된다. 노자의 "도라고 이를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도 그렇고 칸트의 "결코 물 자체를 알 수 없다"는 선언도 그렇다. 우리는 알수 없기 때문에 자유를 획득한다. 그 자유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즉 삶은 아무 의미가 없음으로써 의미를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톤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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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녀를 껴안고 입을 맞췄다. 물기 머금은 꽃향기가 그를 감쌌다. - [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단편집, 열린책들,  241쪽 그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 젊은 여인은 그와 함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했다. (...) 그녀는 항상 그를 선량하고 특별하며 고상하다고 말했으니, 분명히 그는 그녀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무의식 중에 그녀를 속인 셈이다. - 같은 책, 245쪽 자신에게는 두 개의 생활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는 그런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 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의 삶과 아주 닮은 그런 생활이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 그 속에서라면 그가 진실하고 또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는, 그의 생활의 핵심을 차지하는 그런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없다. - 같은 책,   252쪽 도대체 왜 그녀는 그를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는 언제나 여자들에게 본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놓은, 평생 간절히 원하던 그런 사람으로 그를 사랑했다. (...)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그로 인해 행복하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는 사귀고 가까워지고 헤어졌지만, 한 번도 사랑한 적은 없었다. (...) 그런데 지금, 그의 머리가 세기 시작한 지금,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 같은 책,   254쪽 그리고 이 사랑이 그들을 바꿔 놓았음을 느꼈다. (...) 어떻게 하면 이 견딜 수 없는 굴레에서 벗어날 것인가? (...) 좀 더 있으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때는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거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그 끝이 아직 멀고 멀어, 이제야 겨우 아주 복...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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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가 결혼을 감행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같은 여자를 아내로 얻는 것이 기분 좋았고, 동시에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54쪽 일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과 방법이 법정에서와 다를 게 없었다. 고명한 의사 역시 그가 법정에서 피고들을 대할 때와 똑같은 태도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 같은 책, 78쪽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절망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또 이해할 수도 없었다. - 같은 책, 98쪽 "네가 바라는 게 뭐지?" 이 물음은 문득문득 그의 마음에 생각으로만 찾아들던 개념이 처음, 귀로 들을 수 있는 말로 분명하게 표현된 것이었다. (...)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전에 살던 것처럼 행복하고 기쁘게."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데? 네가 행복하고 기쁘게 살았다고?"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그는 행복했던 지난 삶에서 최고로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 속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지난 삶에서 가장 좋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그 당시에 만족스럽게 여겼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한 인생의 다른 모든 순간들이 그랬다. - 같은 책, 129쪽 전에는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 그러니까 그가 살아온 인생이 송두리째 잘못된 것일 수 있고, 또 어쩌면 그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 그는 눈 앞의 이 모든 것들을 지키고 변호하려 했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는 이...

시선 (Line of 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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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내 시선이 비친다. 시선은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사실 한번도 내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My gaze falls upon at car window. Gaze try to exit out but, in fact it never get out in my outside. 2015.4.30. 7:50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 - 신영복,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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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예전엔 어렵고 낯설게 느꼈던 것이 지금 읽으니 새롭게 다가오며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 사이에 고전을 몇 자 찾아 읽었던 게 도움이 되었나 보다. 다시 말하자면 [강의]는 책에 거론된 고전을 먼저 읽고 읽는 게 도움이 될 만큼 쉽지 않은 책이다. 다음은 [강의] 앞 부분에서 밑줄 그은 문장 몇 개. 일부 문장을 이어붙이면서 편집된 단어가 있음.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인 차이가 지적된다 하더라도 이른바 차이라는 개념으로 그것의 본질 부분을 설명하거나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를 비교하려고 하는 것은 '관계론'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강의], 27쪽 서양에서는 철학을 Philosophy라고 합니다. 지에 대한 애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길은 삶의 가운데에 있고 길은 여러 사람들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beaten pass)입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서양에서 진리란 일상적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고독한 사색에 의해서 터득되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입니다.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동양의 도는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양 사상이 윤리적 수준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비종교적이며 과학과의 모순이 없습니다. - [강의], 36-37쪽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질서라는 의미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장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이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체계이며 질서입니다. 장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서로 조화 통일되어 있...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 신영복,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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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안하고 공허해서 아팠는데 이 책을 몇 자 훑으니까 좀 낫다. 살 수 있다면 결코 슬프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입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 신영복, [담론], 418쪽 15. 4. 27. 추가 - -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완고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설득하거나 주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 신영복, [담론], 14쪽 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틈을 깰 수 있다는 가능성 만으로도 책읽기가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속도가 빼앗아 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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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는 avant_garde_seouler 님의 포스트 에서 어떤 성찰이 담긴 글을 읽었다. (아래는 그 글의 인용) 도구가 과잉 발전하여 인간을 지배하고 삶의 목표를 도구가 설정하는 시대로 진입하는 시점이다. 교통수단은 거리를 좁히기보다는 도리어 더 늘여 놓았다. 인간은 그들을 위해 '달릴' 교통수단을 만들었으나, 달리기 위해 '일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속도가 지나간 자리에 더 이상 시간의 향기는 남아있지 않다. 아래 글은 위 글을 읽고 생각난 것을 적은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기술 발달을 통한 속도의 증가는 흔히 삶의 편리성을 높여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과연 무궁화호보다 새마을호가 목적지에 빨리 가닿을 수 있어서 더 나은 것으로, KTX가 나온 뒤로는 더 발전해 왔다고만 믿어야 하는가. 게다가 오늘 읽은 저 문장에선 "속도"가 거의 나쁜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여기 시간이 쌓여 있네요 ㅎ" - 글과 사진 모두 구글+ Boyeong Kim 님의 공개글 에서 따온 것입니다 시간 현대사회에 속도로부터 얻는 가치와 효용은 온전히 우리의 "시간"에서 빼앗아 온 것이다. 우리는 통일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차창밖 풍경을 두 눈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을 뺏겼고, 온 세상이 느리게 흘러감으로써 나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계속 빼앗기고 있다. 현대의 속도는 우리의 시간을 아껴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멸종시키고 있다. 공간 빠른 교통 수단으로 우리는 같은 시간에 더 넓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가고' 싶은 공간이 아닌 '가아먄 하는' 공간만 늘어난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한없이 넓어지는 공간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멈춰 살펴보고 느낄 있는 공간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공간에 대해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공간은 없...

상상하는 나

내 몸은 사무실 책상 앞에 있지만 내 정신은 우주 끝간데까지 갔다오고 깊은 마음 속으론 원시시대 유기물까지 거슬러가 닿는다 이 무슨 조화냐 시간과 진화의 법칙을 고민하면 뭐하며 노자의 도와 무의 본질을 생각하면 뭐하냐 진정 노동이 즐거운 것일까 의심하며 살아있는 것의 본질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상상하는 내가 진정한 나일까? 몸이 처한 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진짜 나일까?

이제 후회를 한다

직업 선택을 잘 못 한 거 같다. 직장이 아니라 직업. 그 때의 선택을 상기해 보면 인과응보가 맞는 말인 듯. 인생을 돌이켜보며 후회하는 때가 오면 드디어 늙다리에 접어든다던데 이제 내가 그렇게 되었구나. 한편으로 정말 뭔가 간절히 하고 싶어서 이런 감정이 이는 것이다.

오목한 미래의 책 읽기, 글쓰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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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한 미래]의 지은이 배일한은 "지금 세계는 한 점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 한 점 블루홀(Blue Hole)은 심리적 시공간을 오목하게 만든 거대한 힘이 현실 세계와 마주치는 지점입니다. 세계가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면서 사람들은 자아의 폭발적인 확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 욕망이 지배한다고 합니다.  첫째, 전지성. 세상의 모든 이들과 접속하며 모든 지식을 알고 싶다는 욕망. 둘째, 편재성(Ubiquity). 자신이 이 순간 다른 장소에도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 셋째, 시간의 정복. 소중한 시간을 오직 자신의 행복을 위해 쓰고 싶다는, 짧은 시간에 최대한의 욕망 실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 [독서 100권으로 찾는 - 마흔 이후, 인생길], 168 쪽,  "두 문화의 만남을 위해" 중 "인간의 검색 습관은 책의 세계에서 '분할'과 '통합'이 동시에 진행되도록 만들었습니다. 분할이란 한 권의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가 갈수록 잘게 쪼개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잘게 쪼개진 키워드를 설명하는 방식은 통합적"이라고 썼던 저의 주장은 이제 대세입니다. - 같은 책, 155 쪽,  "스마트 시대의 글쓰기" 중 원래 철학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습니다. 우리는 철학적 사고를 통해 기존 질서마저 뒤집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있는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 즉 스스로 정답을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 같은 책, 124 쪽,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중 백화현 국사봉중헉교 교사는 [학교도서관저널] 2012년 3월호의 특집 "이제 책모임이다"에서 다음과 같이 책모임 운동에 대해 말했습니다. 내가 없다면, 내 아이의 존재가 사라져버린다면.. 그것은 공부나 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일이지 않은가? 성적보다 더...

우리 아이들을 좀비같이 살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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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16 일주기입니다. 우리는 원하지 않게 우리보다 먼저간 생명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나마 희생한 넋들이 우리 후손, 미래의 젊은 생명으로 되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한국 사회가, 어른들이, 정치가 4.16을 잊으면 안됩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진상을 규명하고 뭔가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변하는 모습을 후손들 앞에서 보여주지 않으면 최민수 씨 말마따나 지금 우리는 우리의 목숨과 우리 자식들을, 우리 모두의 미래를 수장시키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의 우리 모습, 이렇게 무기력한 우리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모두 살아도 진짜 삶이 아닌 좀비나 다름없는 삶을 살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정치야! 이미지 출처 : http://live.media.daum.net/issue/tiredness 아래는 [ 세월호가 지겨우세요? ] 기사 인용 하지만 유가족들은 그런 악플들보다 더 아픈 것이 이제 지겹다, 언제까지 세월호 타령이냐, 이제 그만해라 라는 말이라고 했다. 세월호 피로감은 정치적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 속에서 세월호 이슈는 자연스럽게 민생을 불편하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어쩌면 그 지겨워하는 태도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에 지겨워면서 타인의 말에 귀를 닫기 때문에 세상의 그 많은 고통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의사들도 죽는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그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얼마나 많은 치료를 받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적게 받는지다. 의사들 역시 죽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에게 현대 의학의 한계에 대해 설명하려하고, 시간이 왔을 때 그 어떤 극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으려 한다. 간호학 교수 카렌 켈은 “평화를 향해: ‘좋은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분석(Moving Toward Peace: An Analysis of the Concept of a Good Death)”에서 좋은 죽음을 구성하는 것들로 편안함과 통제력, 마무리된다는 느낌 갖기, 최선의 관계 만들기, 케어에 가족 참여시키기 등을 들었다. 이 중에 병원이 제공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나도 내 주치의에게 원하는 바를 미리 지시해 두었다. 의사들에게는 거의 그렇겠지만 그것은 모두 쉬운 선택이었다. 극적인 요소는 아무것도 없다. 때가 되면 나는 조용하고 평온하게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들것이다. - 켄 머레이, " 의사들은 왜 다르게 죽을까 " ( Why Doctors Die Differently ) - 위 글은 전부 기사 내용 인용임 - Google+ :  plus.google.com/+WhizzXanadu/posts/jcYU65NkLVv

인생 말년의 풍경, 베토벤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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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양식(Late style)'이란 개념은 아도르노에게 저작권이 있다. (...)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 등에서 베토벤의 후기 작품, 그러니까 [피아노 소나타 32번]이나 후기 현악사중주들에 대하여 '말년의 양식'이라는 상처입은 광휘를 부여했다. (...) 가령 이런 풍경이 떠오른다. 흔히 예술계의 원로들은 삶의 후반기에 이르러 사회 저명인사 노릇이나 하고 스승이니 대가니 하면서 조화, 소통, 해결 등의 근사한 말들을 한다. (...) 다음으로 가능한 풍경은 진실로 원로급 대가 혹은 대가급 원로가 삶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진정한 내적 통합의 작품에 몰두하는 것이다. 사이드는 호의적으로 '공인된 경륜과 지혜', '특별한 성숙', '화해와 평온함의 기운'으로 충만한 이 풍경에 렘브란트, 마티스, 바흐, 바그너 등을 존엄하게 안치한다. 그러나 사이드는 세번째 풍경 곧 '말년의 양식(Late style)'을 옹호한다. 최후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자기 삶의 모순을 응시하고 타협할 수 없는 세상의 허위와 긴장하면서 인류가 한 번도 겪지 못한 양식을 토해내면서 비통하면서도 장엄한 풍경이 그것이다. (...) 생물학적 노년에 이른 진짜 예술가는 (...) "관습적인 언어와 미적인 것을 훼손하고 그 한계를" 찢어버리고 미증유의 비타협적이며 불가해한 양식으로 망명을 떠나버린다. - 정윤수,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 대한 글, 씨네21, 974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삶을 바친 수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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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는 화려한 수학자들의 승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사람들에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란 이런 것입니다." 하고 설명한다고 해도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350년이나 걸려 푼 것은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문제잖아요?" 이렇게 취급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물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은 그런 아무 도움도 안될 것 같은 문제나 미로에 짧은 인생 전부를 걸 수 있다'는 사실이다. - [철학 수학] (부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악마에 홀린 수학자들의 이야기), 에필로그

근대 합리성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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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파이어아벤트의 인식론적 무정부주의는 수학, 물리학, 철학이 스스로 자신의 한계와 불가능성을 명확하게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러한 학문의 내적 붕괴가 세계대전이라는 외적 요인과 결합되어 근대 합리성에 대한 낙관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너머 편] 42쪽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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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삶이고 구차한 목숨이다. 그런데 하늘은 왜 이리 파랗고 봄은 왜 내게도 오는가? - 너무나 화창한 4월 봄날에. - Goolge+ https://plus.google.com/+WhizzXanadu/posts/8xhJzB2egva

이황과 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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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유학사는 량치차오 같은 대학자가 관심을 가질 정도로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왜냐하면 조선 유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선진 유학과 송 대 유학에 정통해야 되기 때문이다. 리기, 인심 도심, 본연지성, 사단칠정 등은 매우 추상도가 높은 개념이라 접근하기 쉽지 않다. 이황과 이이, 그리고 퇴계학파와 율곡학파는 바로 그것을 가지고 논쟁을 했다. 그래서 한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원효나 지눌의 불교철학도 마찬가지다. (...) 이황과 이이를 비롯한 조선의 철학에는 이러한 공적인 것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공부론적인 사고가 들어가 있다. (...) 조선 학자의 공부론은 현대의 정의에 대한 메타적인 논의에 있어서는 부족하지만, 내면적이고 실천적인 공부론으로서 의의가 있다. - 조남호, [이황 & 이이, 조선의 정신을 세우다] 프롤로그에서

흐르는 강물을 잡을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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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되어서 기다려라. 근데, 그냥 포기하는 것도 해답이 될까. 아니, 가장 현명한 건 강물에 몸을 맡기는 것이리라.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 - 이미지 출처 : plus.google.com/115207886822412834249/posts/D5jVAKVoH66

미래를 그리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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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커피를 먹다보면 옛 사람 생각이 나긴 해 자주 가던 술집에서 좋아하는 안주를 먹다보면 그 사람 생각이 나 하지만 오늘같이 추운 날  홀로 걷다가 무심코 달을 보면 아직 보지도 못한 네가 사무치게 그리워 그건 훗날 성공한 나 자신일수도  사랑에 빠진 나일수도 있어 물론 내가 사랑하는 너일수도 있지 그렇게 난 미래의 아주 조금 자란 나와 그리고 나와 함께 있을 널 그리워 해 - 이미지 출처 : 10 Portrait Photographers You Should Follow Right Now on 500px - 사진 작가 홈 : Maja Topčagić

남은 생이 하루뿐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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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루밖에 없다면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고 너에게 사랑한다 말하리라 눈빛으로 말하리라 네 눈빛으로 대답을 들으리라 - 8eight의 [나에게 하루밖에 없다면]을 듣다가

소주잔 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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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 이상 살다보니 새로운 게 없다 새로운 건 마음 속 꿈 또는 판타지 뿐 내뱉는 말들은 모두 시궁창 냄새나는 구차한 핑계 뿐 유일하게 판타지가 아니면서도 나를 애틋하게 쳐다볼 수 있는 곳 작은 소주잔 안 물 속에 어릴 적 순수했던 한 아이의 눈망울이 있다

동면에 든 뱀처럼..

2015년 1월의 마지막 날. 바깥 날씨가 추워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쉬고 있는 중. 올해의 연간 계획은 '계획 세우지 않음'임. 계획없이 되는 대로 사는 게 더 잘 사는 길인지도 모르지. 언제나 계획 세우다 시간 흘러가고, 계획대로 안해서 실망한다고 에너지 쓰고. 크크.. 화려한 꿈을 꾸기보다 욕심없이 살자. 오늘 하루의 사소한 꿈만 생각하면서 하루를 넘기자. 동면에 든 뱀처럼 살자.

요즘..

영화도 예전처럼 보고 있고 책도 아주 조금씩 읽고 있지만, 도대체 글을 못쓰고 있다. 이러다 흔적도 못남기고 스러져가는건 아니겠지. 언젠가 조만간 조금씩 글 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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