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가 결혼을 감행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같은 여자를 아내로 얻는 것이 기분 좋았고, 동시에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54쪽


일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과 방법이 법정에서와 다를 게 없었다. 고명한 의사 역시 그가 법정에서 피고들을 대할 때와 똑같은 태도로 그를 대하고 있었다.
- 같은 책, 78쪽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절망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또 이해할 수도 없었다.
- 같은 책, 98쪽


"네가 바라는 게 뭐지?" 이 물음은 문득문득 그의 마음에 생각으로만 찾아들던 개념이 처음, 귀로 들을 수 있는 말로 분명하게 표현된 것이었다. (...)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전에 살던 것처럼 행복하고 기쁘게."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데? 네가 행복하고 기쁘게 살았다고?"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그는 행복했던 지난 삶에서 최고로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 속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의 지난 삶에서 가장 좋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이제는 그 당시에 만족스럽게 여겼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한 인생의 다른 모든 순간들이 그랬다.
- 같은 책, 129쪽


전에는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 그러니까 그가 살아온 인생이 송두리째 잘못된 것일 수 있고, 또 어쩌면 그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

그는 눈 앞의 이 모든 것들을 지키고 변호하려 했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는 이것들이 헛되고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똑똑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키고 변호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 같은 책, 140쪽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는 이 인식이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바로 이 인식 때문에 무엇보다 큰 고통을 받았다. (...)

"그래, 모든 게 잘못됐었어." 그가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별 것 아냐. 그래, 그러면 돼. '올바른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올바른 일'은 대체 뭐지?" 그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사흘째가 다 끝나갈 무렵, 그가 세상을 뜨기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빛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여태 잘못 살아왔으며, 아직은 이 잘못된 삶을 바로잡을 기회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올바른 일'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물은 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며 입을 다물었던 것이었다. 이 때 누군가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자 아들이 보였다. 그는 아들이 가엾어졌다.
- 같은 책, 145쪽


"임종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를 굽어보며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들었고 그 말을 마음 속에서 되뇌었다. '죽음은 끝났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

1886년 3월 25일
- 같은 책, 148쪽


그 유명한 톨스토이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지난 16일의 구글+ 책 세상의 독서 모임을 계기로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읽고 쓴 글)과 함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게 된 건 내 짧디짧은 독서 이력을 생각할 때 행운이다.

짧은 생각으로 1880년대에 씌여진 소설이 너무나 친숙하게 읽힌다는 것, 그 긴 세월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글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글은 지은 사람보다 생명이 더 길다는 아이러니.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고민에 대해서는 톨스토이와 내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반 일리치가 죽으면서 보여준 모습을 통해 하나의 생각은 가질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환상, 두려움, 그리고 죽음 그 자체는 내가 죽을 때에만 비로소 사라질 것이다. 그 때까지는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길들이고 죽음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출처 : en.wikipedia.org/wiki/Leo_Tolst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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