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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pril, 2018

2. 죽음의 의미에 대해

눈을 뜬다. 순간 동공 안으로 빛이 들어와서 놀라 질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빛이 구름 속에 가렸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찰나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공기의 흐름이 거세지 않다고 느낀다. 공기의 입자가 콧속부터 눈구멍까지 몸의 모든 구멍을 파고 드는데 부드러운 애무를 받는 기분이 든다. 언뜻 푸른 수목이 빼곡한 주위 산의 능선이 보이더니 곧바로 사방이 빌딩의 유리 벽면으로 가득차 빛의 반사가 쏟아져 혼란스럽다. “다음에는 도심에서 하지 말아야겠군.”이라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추락하는 중이다. 아니 사실은 내가 아니라 내가 연결한 피실험자의 몸이 추락하는 중이다. 갑자기 사방이 어둠에 휩싸인다. 삽시간에 온 몸과 정신에 공포가 밀려온다. 그것이 어두움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곧 죽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의문이 들었다. 곧 몸이 움직일 수 없게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직 죽지 않았다고 의식했다. 사지의 뼈가 다 부서지고 뇌수가 두개골 밖으로 튀어나오고 피가 사방으로 터진 상태였다. 죽은 상태를 느끼는 감각과 죽은 상태를 바라보는 생각이 중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계측 화면이 멈췄다. 기계는 정보가 수신되지 않는 시간이 5초 이상 지속되면 연결을 차단하게 설계해 두었다. 그동안의 죽음 연구에서 몇 가지 사실을 밝혀내기는 했으나 최근에는 진척이 없다.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무의미한 단서만 몇 개 얻었을 뿐 정작 죽음 자체의 의미나 그 이후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그의 얼굴, 정확하게는 그 소년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정이 없다. 공포스러운 표정은 없고 기쁨도 슬픔도 전혀 없는 얼굴이다. 체념한 것인가? 처음 잡아올 때 보였던 두려움은 없어지고 평화를 찾은 얼굴이다. 소년의 얼굴은 어딘가 낯설지 않다. “저 소년은 내가 가르치는 학급의 어느 학생 같군.”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저 얼굴이 내 얼굴인가?”라고 순간 생각이 들었다가 사라진다. 머리에...

1. 삶의 의미에 대해

고백하건대 나는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계속 곱씹어왔다. 사는 게 힘든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삶이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인 것이다. 대부분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지만 가끔씩 소소한 즐거움도 있으니 굳이 ‘의미’를 찾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다른 많은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왜 사냐?”라고 묻는다면 나도 다른 이들처럼 “사는 게 이유가 있어서 사냐?”라고 되물었을테니까. 하지만 사변(思辨)적인 성격 탓인지 삶의 즐거움이 부족한 탓인지 계속해서 그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 사나? 사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해야 하겠지만 너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바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다. 우선 의미(意味)는 ‘뜻’이거나 ‘가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는 ‘말이나 글의 뜻(meaning, sense)’이라는 개념 말고 ‘사물이나 현상, 행동의 가치(value, worth)’ 또는 ‘중요성’, ‘유용성’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삶의 가치로 짚는 것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우선 “태어난 대로 산다.”, “신이 창조한 대로 살아야 한다.” 등의 논리다. 나는 이것을 인과론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원인이 결과를 일으키므로 결과에 귀속되는 자는 원인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얘기를 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본분에 맞게,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얘기하고 그것이 가치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원인에 충실한 삶’이라는 것이 삶의 가치라면, 세상에 태어나면서 모든 것이 그 원인(민족, 부모, 환경, 신)에 의해 규정되고 거기에 어울리게 사는 것이 가치롭다면 어떨까. 나라는 개체는 나의 주인이 아니고 주어진 규율대로 살아야 하고 성공에 대한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면 설사 주어진 것에 복종하며 산다 한들 보람이 있을까. 그래서 항상 우리는 나를 찾아 나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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