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 : 패러다임을 뒤흔든 논쟁의 과학사


아래 밑줄그은 문장은 이 책의 수많은 일화와 설명과 번쩍이는 생각들 중 아주 일부분일 뿐인 나만의 의미심장한 문장들이다. 읽은 소감은 그 아래에 간략하게 썼다.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
- 토비아스 휘르터, 막스 라우너 지금 / 알마 / 2013년


머리말

다중우주는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친 발상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500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며 더욱이 자기 축을 중심으로 자전도 한다는 생각을 미친 소리로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200년 뒤 이런 세계관은 누구나 익히 아는 교양이 되었으며, 오늘날 지구의 공전과 자전은 명백한 사실이다.
-  11쪽


1장, 다중우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중우주이론은 인류가 품어온 가장 큰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를 풀어줄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존재에 관해서다. 빅뱅 이후 우주는 마치 별들, 은하계, 행성 그리고 인간을 차례차례 만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전자가 갖는 전하나 중력과 같은 자연상수(natural constant)가 약간만이라도 달랐다면 빅뱅 이후 원자나 별은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 (..)

우리의 고유한 우주는 빅뱅이 있고 나서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려고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하는 지적 능력을 갖는 인간을 이끌어내기까지 정확히 140억 년이 걸리는 자연법칙을 가졌다. 우리의 우주는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진 우주들의 바다에서 유일하게 생명 친화적인 섬이다.
- 25-27쪽

하나의 새로운 과학 이론이 당대를 사로잡는 세계관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함께 작용해야만 한다. 토머스 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부터 1970년대에 아주 유명해진 개념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여기서 패러다임이란 생각의 틀과 같다. 쿤이 보기에 과학의 발달은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식과 지식이 부단하게 쌓여 확장되는 게 아니라, 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른바 '표준과학'이라는 안정적인 국면 뒤에는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며, 그 다음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옛 것을 해체하는 '과학혁명'이 어어진다. (..)

지금까지 저 밖에 다른 우주들이 있다는 시각은 단지 짙은 의심을 받을 따름이었다. 최소한 몇 가지 점에서 경험을 통한 테스트를 극복할 수 있어아먄 우리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속편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 29-30쪽

다중우주를 용인하는 사람은 과학의 숭고한 이상, 무엇보다도 실험을 통한 검증 가능성의 요구를 접어두어야만 한다. 평행우주들은 그 본성상 직접적인 관찰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빛은 하나의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넘어갈 수 없다. 그런데도 자연과학자들이 다중우주를 이야기해도 좋을까? 바로 이 물음이 물리학자에게 편가르기를 하게 만든다.
- 31쪽


2장, 코페르니쿠스 혁명

21세기의 초입인 오늘날 우주를 다루는 학문, 곧 우주론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편안한 시기를 오래도록 누려왔다. 이 우주론을 지배한 패러다임은 빅뱅이론이다. 어떤 과학자도 빅뱅을 의심하지 않았다. 빅뱅 모델이 천문학자가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걸 설명하지는 못한다. 과학자들이 우주를 더욱더 정밀하게 측정할수록 빅뱅 모델에는 여기저기 흠집이 생겨났다. (..)

원자부터 우주 전체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걸 설명하는 우주공식을 찾으려는 시도는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경에 처했다. 지난 20년 동안 이른바 '모든 것의 이론'에 가장 맞춤한 후보로 각광받던 '끈이론'은 짓다 만 건물로 남았다.
- 37-38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뒤죽박죽을 하나의 물리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55개의 투명한 원판들 혹은 수정 평면으로 이루어져 모두 하나의 공통된 지점,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

이후 등장한 천문학자들이 좀더 정확하게 천체를 관측하자 현실과의 불일치가 속속 들어났다. 구원의 손길은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

1,400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원형궤도로 만족해했다. 그러니까 지구 중심의 우주관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2,000년을 끄떡없이 버텨냈다.
- 50-51쪽


4장, 초보자를 위한 다중우주

뉴턴은 "만약 별들이 제한된 공간 안에 분포되어 있다면, 이 공간의 경계 쪽에 있는 물질이라 할지라도 중력 때문에 안쪽으로 끌리며, 결국 모든 물질이 전체 공간의 중심으로 몰려 커다란 공 모양의 물질덩어리가 생겨나야 할 것입니다." (..) 그러나 하늘의 별들이 각기 자신의 위치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무한한 공간에 분포되어 있다고 보는 게 마땅하다고 뉴턴은 결론지었다.
- 83쪽

현대의 우주학자들은 다시금 우주를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바로 정의(定義)로!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 눈(인공의 눈까지 포함)이 볼 수 있는 거기까지가 우주다. 우리 시야의 지평선이 우주의 경계인 셈이다. (..)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은 언제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 과거는 유한하다.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빛이 도달하는 데 이 세월보다 적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별만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로 미루어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할 수 있다. 관측 가능한 우주는 모두 137억 광년이라는 범위 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실제 범위는 이보다 훨씬 더 크다.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으로 관측된 천체와의 거리는 대략 450억 광년으로 계산되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이런 식의 정의는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느낌을 준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게 우주라고 정의한다면, 정확히 말해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 84-86쪽

가장 설득력 있는 가정은 우주가 지평선 너머에서도 이쪽과 마찬가지로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저 바깥에도 별은 빛나지만 그 빛이 너무 멀어서 우리에게 절대 도달할 수 없으며, 그 별들은 성단을 이루고 성단은 다시 무리를 형성한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우주와 똑같이! 그러니까 우주는 어디서나 같은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우주학의 원칙' - 1) 우주는 '균질성(homogeneity)'를 가진다. 곧 어느 관점에서 보든 똑같은 모양이다.
우주의 균질성은 '코페르니쿠스 원리'라고도 불린다. 균질성은 지구가 수많은 행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강조하는 관점을 일반화한 것이다.
- 88-89쪽

'빈 공간 이론'을 믿는 우주학자는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는 코페르니쿠스 원리에 맞춰 암흑에너지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우주의 지평선 뒤 공간은 대체 얼마나 클까? 짐작은 가능할지 모르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순전히 수학적으로 보자면 우주는 경계가 없는 동시에 유한하다. 우주는 그 자체로 굽어진 원형일 수 있는데, 말하자면 축구공의 표면을 삼차원적으로 생각한 것과 같은 모습이다. 어느 방향으로 기어가든 끝없이 기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공의 표면적은 유한하다. 우주도 공과 똑같이 그 자체로 완결된 구형이라고 한다면, 유한하지만 무한하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 91-92쪽

무한 공간을 다중우주로 선포한다면 유한함과 무한함 사이의 딜레마가 풀린다. (..) 무한함과의 싸움은 뉴턴 역시 다중우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물론 뉴턴의 그것은 우주들이 시간상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시리즈 다중우주였다.
- 94쪽


5장, 이 세상의 태초

대폭발이라는 미친 발상은 마침내 정식 이론으로 인정받기까지 세 번의 시도와 40년이라는 세월을 필요로 했다. (..)

오늘날 거의 도그마처럼 우주학을 지배하는 빅뱅이론이 생겨나는 데는 8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이론은 우리의 우주를 아름답고 거룩한 세계로 묘사하는 현대물리학의 창조설화다.
- 106-107쪽

우주배경복사는 정상우주론이 누운 관에 박힌 마지막 못이라고 스티븐 호킹은 단언한다. 배경복사는 우주의 팽창과 더불어 빅뱅의 가장 중요한 증표다. 이를 둘러싸고 과학자들이 그토록 놀라는 이유는 어느 방향에서나 보이는 등방성과 균일함이다. 북극의 하늘이든 남반구에서 바라보는 천체이든, 이 배경복사는 어디서나 거의 같은 파장 길이를 가진다. 배경복사는 우주의 모든 영역이 옛날 언젠가에는 서로 접촉했음이 틀림없다는 증거다.
- 119쪽

대수축(big crunch)인가, 대동결(big freeze)인가? 불인가, 얼음인가? 우주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려고 천체물리학자들은 1990년대에 남극에서 기구를 띄워 '코비' 위성을 발사했다. (..)

결과는 대동결과 대수축의 추종자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우주는 열려 있지도 닫혀 있지도 않았고, 정확히 그 중간이었다. 곧 평평했다. (..)

전형적인 빅뱅이론으로는 이런 우연을 설명할 수 없다. 물론 폭발한 바로 그 순간, 그것도 10의 -9승(나노)에다 다시 -9승을 여러 번 거듭한 것보다도 짧은 순간에 우주가 그야말로 번개처럼 팽창했으리라고 짐작할 수는 있다. 이런 이론을 우리는 '급팽창이론(inflation theory)'라고 부른다. 물론 전혀 증명되지 않았고,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은 이론이다. 급팽창이론은 다중우주라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짝을 이룰 때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뱅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중우주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중우주에는 한 번의 대폭발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대폭발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로 우리 우주가 생겨났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누구도 그런 생각놀음을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우주학은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이제 '다양한 우주들'이라는 비전만이 우주학을 위기로부터 구할 것이다.
- 122-124쪽


6장, 위기의 우주학

앨런 구스의 팽창은 시점 제로 이후 10의 -37승 초에 시작되어, 시점 제로에서 10의 -35승 초면 벌써 끝난다. 이 티끌 같은 시간 안에 우주는 10의 50승 배를 팽창했다.
구스의 착상은 평평함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

그리고 이로써 지평선 문제 역시 해결되었다. 급팽창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초광속의 속도로 팽창했다. 이런 속도는 원래 상대성이론의 속도 제한에 걸리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에는 공간이 스스로 팽창했다. 공간의 자기 팽창은 상대성이론도 허락한다. (..)

우주는 평평하다. 공간이 휘어지지 않고 평평하려면 우주는 1세제곱미터당 평균 다섯 개의 수소 원자를 가져야만 한다(항성과 행성은 밀도가 훨씬 더 높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몇십 억 광년을 평균값으로 가지는 공간이다). 그러나 항성과 행성과 별들 사이의 먼지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물질은 1세제곱미터당 0.2개의 수소 원자들이라는 밀도를 가질 뿐이다. 그럼 나머지 4.8개의 수소 원자들, 곧 부족한 95퍼센트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 135-137쪽

암흑에너지는 행방이 묘연했다가 몇십 년 뒤 갑자기 나타나 우주학자들을 당황케 했다. 1917년에 아인슈타인은 뉴턴 이후 거의 모든 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영원히 불변하는 우주를 믿었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팽창하거나 아니면 수축하는 우주를 예견했다. 그는 자신의 공식에 그리스 알파벳 람다(λ)로 나타낸 하나의 상수를 추가했는데, 일종의 밀쳐내는 힘으로 작용하는 람다는 우주가 균형을 이루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계산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나중에 아인슈타인이 이를 두고 공식적으로 사과했을 정도였다. (..)

그러나 가속하며 팽창하는 우주를 보여주는 초신성 데이터는 아인슈타인의 해묵은 아이디어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 아인슈타인과 달리 오늘날 우주학은 람다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람다라는 이름의 암흑에너지가 새로운 우주관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조각과도 같다. (..)

우주가 팽창할수록 우주를 채우는 물질들은 옅어지지만, 그만큼 더 암흑에너지의 지배가 강력해진다. 몇십 억 년 뒤 우주는 거의 암흑에너지로만 채워질 것이다. 어쨌거나 창조설화의 최신 버전은 이렇게 주장한다. 우주는 암흑에너지로 끝나며, 다시 암흑에너지로 시작될 수 있다고 빅뱅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믿는다. (..)

현재의 연구 수준은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주는 70퍼센트가 알 수 없는 에너지로 이뤄져 있으며(25퍼센트는 암흑물질), 이 힘의 정체를 두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서로 완전히 엇갈리는 의견을 내놓을 따름이다.
- 144-147쪽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우주공식, 곧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이론을 찾겠다고 한다. (..) 이들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뀐 것과 비슷한 관점의 전환을 준비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태양계의 중심에서 밀어냈듯, 이제 우리의 우주는 옆으로 비켜선다. 코페르니쿠스 당시 지구가 여러 행성들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오늘날 우리의 우주는 수많은 우주들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옛 급팽창 모델은 영원한 급팽창이론으로 확장되었다. 이에 따르면 공간은 한 번만 팽창하는 게 아니라, 늘 팽창한다. 마치 욕조에 받아놓은 따뜻한 물에서 끝없이 거품이 피어오르는 것과 같다. 각각의 거품 방울은 독자적인 자연법칙을 자랑하는 새로운 우주의 싹이다. 단 하나의 우주공식이 있는 게 아니라, 무한히 많은 우주공식들이 있어야 한다.
- 147쪽


9장, 기묘한 이웃

1980년대에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이 선사한 희망에 열광했다. 이들은 입자를 더이상 점 모양의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줄 혹은 끈으로 설명했다. 입자를 끈으로 이해하면서 무한함을 수학의 공식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중력과 양자물리학의 통일이 가시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이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끈이론은 여전히 너무 복잡하다. (..)

이 이론은 공간이 최소한 아홉 개의 차원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성립한다. (..) 마침내 물리학자들은 이 보충의 차원들이 극미한 공들처럼 얽혀 있음을 발견했다. (..)

문제는 해결된 것처럼 보였지만, 끈이론을 주장하는 이론물리학자들이 여기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 컸다. 보충의 차원들을 이끌어낼 무수한 가능성들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

2000년, 미국 출신의 물리학자 두 명이 끈이론이 세 개의 공간 차원에 시간 차원을 더해준 4차원을 묘사하는 데만 10에 500승이라는 엄청난 수의 변형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

수많은 우주공식, 수많은 우주들. 이로써 끈이론 역시 다중우주를 가지게 되었다.
- 203-206쪽


10장, 만약 우주가 분화한다면

20세기가 문을 연 이래 물리학자들은 물질과 빛의 가장 작은 기초, 곧 전자, 양성자, 중성자, 광자 등의 작용방식을 이론적으로 파악하려 시도해왔다. 그러다가 돌연 집단적 창의성이 발현되면서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와 몇몇 물리학자들이 남은 세기 동안 물리학을 주도할 이론을 찾아냈다. 이 이론을 우리는 양자이론 혹은 양자역학이라고 부른다. (..)

측정계기를 켜기만 하면 입자들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듯이 얌전을 떨었다. 모든 게 제 자리를 지켰고, 서로 겹치는 일은 없었다. 관찰하지 않으면 소우주는 서로 파장으로 엉키며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었다. (..)

우연의 이론? 이런 걸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양자역학의 창시자들은 저마다 일부분씩 이 이론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공동작품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추상 수학이었다. (..)

시간이 흐르면서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점차 그 공식이 무엇을 뜻하는지 눈 뜨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의 공식은 입자들에게 예전 이론들은 금지했던 것, 곧 일상 경험과는 모순되는 점을 허락해줬다. 즉 입자들은 여러 다른 상태들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각기 다른 장소에 동시에 존재하거나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하나의 전자가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건 양자역학의 공식으로 보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자에게는 이런 동시 존재가 지극히 정상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중첩(superposition)이라고 부른다.
양자역학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공을 거뒀다. 실험을 통해 무수히 검증되었으며, 소수점 이하 수십 자리까지 정확하게 측정했지만, 예측과 측정 결과 사이에는 조금도 모순이 드러나지 않았다. 양자역학 덕분에 우리는 기술의 이정표를 세웠다. 레이저, 컴퓨터, 휴대폰 등은 모두 양자역학 덕에 가능해진 기술이다. (..) 그리고 일상의 무수한 현상들에도 그 바탕에 양자 효과가 깔려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다양한 물질들의 단단함과 색채, 태양전지의 빛 흡수, 단단한 물건들의 존재, 물을 끓이고 얼리는 일 등, 이 모든 현상이 양자역학으로 설명되었다.
- 216-218쪽

실제로 실험물리학자들은 지난 세월 동안 양자물리의 독특한 성격이 거시세계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줬다. (..)

보어 이후 많은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양자역학의 중첩 상태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누구든 그것을 측정하려고만 하면 무섭게 붕괴하고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의 공식에 이런 신묘한 붕괴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에버릿은 간단하게 붕괴를 삭제했다. 그는 우리가 중첩 상태를 볼 수 없는 이유를, 우리 자신이 그 중첩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연 물리학자는 그 자신이 이중의 상태에 빠진다. 물리학자의 한 부분은 죽은 고양이를, 다른 부분은 살아 있는 고양이를 본다. 고양이의 운명을 전 세계가 함께 한다. (..)
붕괴와 더불어 우연도 사라졌다. 코펜하겐 해석이 보는 미시세계는 일종의 카지노였다. 전자 혹은 고양이가 중첩 상태의 붕괴 이후 어느 상태로 이르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른 양자이론은 확률만 이야기할 수 있을 따름이다. 에버릿의 세계에서 붕괴는 일어나지 않는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아인슈타인이 들었다면 몹시 흡족해 했을 얘기다. (..)

우주는 여러 상태들로 동시에 존재하며 분화를 거듭한다. 양자역학의 체계가 중첩 상태에 있는 것을 관측할 때마다 우주의 새로운 가지가 생겨난다. 우주는 곧 다중우주다.
- 222-226쪽


솔직히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가 있고 없고는 우리의 삶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없다. 게다가 심리적이거나 철학적으로 미칠 영향도 미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하나 남는 생각은 이 논의들이 무한한 범위를 논하고 있고 그 속에 내 존재가 얼마나 작고 미미한가 하는 것이다.

우주의 진리가 무엇이든간에 그것과 내 삶에 대한 고민은 많이 다르겠지마는 한가지 확실한 것은 광활한 세계에서 엄청난 우연으로 이 책을 읽는 내가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지구 별에 산다는 것, 지금 생명으로 살아 숨쉰다는 것, 우주에 비하면 티끌같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외경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내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수십 년 전에 멈춰 있었던 지식, 예를 들어 "'우주가 지금은 팽창하고 있지만 결국은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할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팽창할 것인가'가 우주학의 화두다."로 읽었던 과거 우주론의 최신판을 접하면서 느낀 쾌감은 남달랐다.

또는 우주론을 중심으로 과학 이론의 개괄적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내 짧은 삶의 궤적에서 이렇게 오로지 지적인 유희로만 느껴지는, 또 한편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것 같기도 한(설마!) 주제를 즐기는 시절로 다시 돌아오는 나 자신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 이 책을 읽으며 이전에 구글+에 쓴 소감 : "이 책 진짜 재밌네요. 한 마디로 굉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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