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데미안, 한 젊음의 이야기]
내 어린 시절 정확히 언제였던지 몰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즈음에 읽었던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기억의 잔상으로도 어린 나이에 받았던 정신적인 충격과 아브락사스라는 단어의 신비함이 주었던 영향은 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한다. 알은 세계이다. 새는 아브락사스라는 신에게로 날아간다."라는 문장은 어린 마음에 신비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브락사스라는 신에 대해 들은 바 없었고 카인의 표식에 대해 들은 바 없었던 나는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각인하였던 것 같다. (당시 읽은 책에는 "아브락사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얼마 뒤 영문이 Abraxas임을 알게 되고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나이가 들면서 [데미안]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갔지만(지금 다시 읽으니 아브락사스가 나온 일화 이후로는 거의 새로 읽는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가끔씩 그 책을 읽었다는 자긍심 비슷한 감정은 갖고 있었다.
최근 만 19년간 직장에서 해오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되었고 사무실도 옮기게 된 시점에 아이들을 위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이십여 권을 사면서 [데미안]도 샀고, 나는 여러 권 중 맨처음 이 책을 집어들게 되면서 30여 년만에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놀랍게도(!) 어릴 때 읽었던 신선함이 그대로 와닿았고 어린 나이에 이해가 안되던 부분이 새롭게 이해되면서 이 이야기의 진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삶이 결국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주제가 가진 의미가 불혹을 넘긴 나이에 이해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나도 매번 새롭게 나를 찾는 길에 서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고 고마움을 느낀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인 싱클레어가 그토록 힘들게 찾고 싶었던 "자아 찾기"라는 것은 어찌보면 성인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나 경험과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할 것이 바로 이 길이 아닌가 싶다.
또한 지금 생각으로는 "카인의 표식"이 어쩌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자가 가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로 나도 카인의 표식을 갖고 싶고 계속 책을 읽고 삶을 고민하고 싶다.
카인의 표식이 의미하는 선민의식의 문제, 타락의 실체적인 경험에 비해 깨달아가는 과정이 개인적인 환상이나 회상으로 이뤄져 비현실적이었던 점, 어릴 때부터 데미안이란 비현실적인 존재의 도움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 문제점도 많이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데미안]은 내 인생의 길을 잡아준 소중한 책으로 아끼기에 부족한 데가 없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환상이 얼마나 삶에 큰 양분이 되는 지 이해한다면 이런 이야기도 부족함이 득이 될 지도 모르겠다.
횡설수설했지만 일단 책 속에 몇 문장으로 멋진 추억과 미래를 되새기며 [데미안]과 두번째 만남을 정리하려 한다. (이 책을 7월 초순 며칠 사이에 다 읽었지만 한달이 지난 이제서야 독후감을 써서 감상과 흥분된 생각이 이미 많이 사라져 아쉽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데미안], 민음사, 7쪽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 누구든 출생의 잔재, 시원의 점액과 알 껍질을 임종까지 지니고 간다. ...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 9쪽
그 자신이, 데미안이 카인 같은 존재가 아닐까? ... 왜 그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 겁 많은 사람들, 사실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경건한 사람들에 대하여 비웃음을 띠고 말했던가?
이런 생각을 나는 끝없이 했다. 돌 하나가 우물 안에 던져졌고, 그 우물은 나의 젊은 영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긴, 몹시 긴 시간 동안 카인, 쳐죽임, 표적은 바로 인식, 회의, 비판에 이르려는 나의 시도들의 출발점이었다.
- 44쪽
그러니까 우리들 누구나 자기 스스로 찾아내야 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지 ...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의 판결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금지된 것 속으로 그냥 순응해 들어가지. 늘 그러게 마련이듯이 그런 사람은 살기가 쉬워. 다른 사람들은 운명을 자기 속에서 스스로 느끼지. ... 그러니 누구나 자기 자신 편에 서야 해.
- 86쪽, 데미안의 말
아무려나 어떤 목적으로 네가 지금 네 잔을 마시고 있는지, 그것은 우리 둘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 116쪽, 데미안의 말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123쪽, 데이만이 보냈다고 생각되는 쪽지글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 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에로, 어쩌면 무(無)에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는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 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 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이미 많은 고독을 나는 맛보았다. 이제 예감했다. 더 깊은 고독이 있으며 그 고독은 벗어날 수 없는 것임을.
-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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