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읽기: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인상 깊은 서평을 기록합니다. 아래는 모두 인용한 것입니다. (밑줄은 제가 친 것임)
#출판사 책 소개 글 읽기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 "분노하라! 그리고 참여하라!"
에셀은 이 책에서 "분노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의 본의는 "참여하라!"다. 그는 자신에게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사회로 오면서 분노의 대상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자신이 나치와 싸울 때처럼 투쟁 대상이 명확하지 않음은 이해한다는 것. 그렇더라도 그는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이 있으며, 각자 분노할 대상을 찾고, 그 분노를 밑거름 삼아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집시들을 추방하는 프랑스 정부의 야만, 자본에 종속된 언론, 가자 지구를 포격하는 이스라엘 정부가 그 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나쁜 태도라고 나무란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란 우리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분노하라] 21~26쪽
비폭력, 우리가 가야 할 길
에셀이 '분노'와 '참여'를 말할 때, 그것은 폭력적 봉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 하며,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로 든 인물들은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터 킹. 이렇게 보면 그는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그도 사르트르처럼 우리가 폭력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은 수긍한다. "자신이 지닌 무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우월한 무력적 방법에 의해 점령당한 쪽의 입장에서 보면, 민중의 반응이 꼭 비폭력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어떤 타격도 주기 힘든 로켓포를 끝내 이스라엘군에 발사한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몸짓'을 이해 못할 행위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테러리즘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폭력으로는 어떤 희망적인 결과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에셀이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타인들의 폭력성향마저 정복하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비폭력이다. "폭력적인 희망이란 없다." 이것이 폭력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8할을 살아낸 인물의 결론이다.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결국 인류는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 [분노하라] 27~34쪽
#관련해서 읽어보기 (최병준 님 블로그 글 '위로가 필요한가, 분노가 필요한가'에서 인용)
김난도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는데, 얼마전 타계한 프랑스의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고 한다. 우리는 이 두가지 충고를 귀에 박히게 듣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요즘 필요한 충고는 과연 무엇일까? (...)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결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스테판 에셀의 충고다.
여기서 그와 같은 맥락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말하는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를 들여다보자. 두 사람은 60년대 세계를 바꾼 프랑스의 68혁명을 자세히 소개한다. 사실 68혁명의 주역은 고교생, ‘고삐리’들이었다. 어떻게 새파란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꿨을까. (...)
근대적 의미에서 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처음으로 갖기 시작한 것은 바리케이드라는 물리적 장치를 통해서이다. 지금의 노동자들이 누리게 된 권리는 역사적으로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바리케이드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 최병준 님 블로그 글에서 재인용
#책 정보
분노하라 | 스테판 에셀 (지은이) | 임희근 (옮긴이) | 돌베개 | 2011-06-07 | 원제 Indignez Vous!
G+ http://goo.gl/dWhBI http://goo.gl/mP4R9
#출판사 책 소개 글 읽기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 "분노하라! 그리고 참여하라!"
에셀은 이 책에서 "분노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의 본의는 "참여하라!"다. 그는 자신에게 "분노의 이유들은 어떤 감정에서라기보다는 참여의 의지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사회로 오면서 분노의 대상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분노의 이유가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덜 확실해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것일 수도 있다. 누가 명령하며, 누가 결정하는가." 자신이 나치와 싸울 때처럼 투쟁 대상이 명확하지 않음은 이해한다는 것. 그렇더라도 그는 "이런 세상에도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이 있으며, 각자 분노할 대상을 찾고, 그 분노를 밑거름 삼아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집시들을 추방하는 프랑스 정부의 야만, 자본에 종속된 언론, 가자 지구를 포격하는 이스라엘 정부가 그 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이런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나쁜 태도라고 나무란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란 우리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분노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결과인 ‘참여’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 [분노하라] 21~26쪽
비폭력, 우리가 가야 할 길
에셀이 '분노'와 '참여'를 말할 때, 그것은 폭력적 봉기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 하며,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로 든 인물들은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터 킹. 이렇게 보면 그는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물론 그도 사르트르처럼 우리가 폭력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은 수긍한다. "자신이 지닌 무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우월한 무력적 방법에 의해 점령당한 쪽의 입장에서 보면, 민중의 반응이 꼭 비폭력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어떤 타격도 주기 힘든 로켓포를 끝내 이스라엘군에 발사한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몸짓'을 이해 못할 행위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테러리즘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폭력으로는 어떤 희망적인 결과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에셀이 여기서 말하는 비폭력이란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고, 타인들의 폭력성향마저 정복하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비폭력이다. "폭력적인 희망이란 없다." 이것이 폭력으로 얼룩졌던 20세기의 8할을 살아낸 인물의 결론이다.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결국 인류는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왔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 [분노하라] 27~34쪽
#관련해서 읽어보기 (최병준 님 블로그 글 '위로가 필요한가, 분노가 필요한가'에서 인용)
김난도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는데, 얼마전 타계한 프랑스의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고 한다. 우리는 이 두가지 충고를 귀에 박히게 듣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요즘 필요한 충고는 과연 무엇일까? (...)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결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스테판 에셀의 충고다.
여기서 그와 같은 맥락으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말하는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를 들여다보자. 두 사람은 60년대 세계를 바꾼 프랑스의 68혁명을 자세히 소개한다. 사실 68혁명의 주역은 고교생, ‘고삐리’들이었다. 어떻게 새파란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꿨을까. (...)
근대적 의미에서 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처음으로 갖기 시작한 것은 바리케이드라는 물리적 장치를 통해서이다. 지금의 노동자들이 누리게 된 권리는 역사적으로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바리케이드 위에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우석훈,박권일 [88만원 세대]. 최병준 님 블로그 글에서 재인용
#책 정보
분노하라 | 스테판 에셀 (지은이) | 임희근 (옮긴이) | 돌베개 | 2011-06-07 | 원제 Indignez V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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