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의 의미에 대해
내가 이끄는 연구팀이 죽음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건 2018년 7월이었다. 반향은 놀라웠는데 죽음 뒤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가 있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하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그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어서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자 전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로 이 삶에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빚을 너무 많이 진 사람, 왕따를 당하여 너무나 괴로운 사람, 사랑에 실패한 사람 등에서부터 그냥 확인해보고 싶어서 자살하는 사람, 단순히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선언한 사람조차 있었다.
이 유행에 열광한 사람들은 이 자살을 “새 죽음-탄생”(新死生, New Death-born)이라는 조어로 명명하기까지 했다. 논문 발표를 주도한 나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런데 다시 6개월이 지난 후 이 사태가 급반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떤 경우에는 죽은 사람들이 사후세계에서 재생하지 않는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된 것이다. 세상은 지옥의 현현(顯現)인 것처럼 아우성이 멈추질 않았고 이른바 과학과 관련있다고 하는 자들은 거리를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논문을 발표한 팀은 과거에 어느 정도 과학적 성과를 낸 사람들었다. 언론들은 ‘논문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애매모호한 몇몇 학자들의 발언을 기사화하며 입증된 사실이 아니라 대중들의 욕망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그 논문에 따르면 죽기 전에 살아왔던 세상에서 죽기 직전에 사랑을, 그것도 “진정한 사랑”을 겪은 사람만이 사후세계에서 새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논문의 논증에 따르면 사랑은 희생이 수반된다. 그런데 타인 또는 공동체를 위해 자기 한 삶을 바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죽은 뒤에 사후세계에 안착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과거 행적을 조사해 추론한 결과 그들의 희생은 순수하지 않았다. 남들이 자신의 희생을 숭고하게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이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순수하지 않은 희생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라고 논문에 씌여 있었다.
또다른 논증에서는 부모들 중 일부도 사후세계에 들어서지 못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을 담당하는 것으로 밝혀진 뇌 시상하부의 신경세포가 동물 수준에서 넘지 못하면 그들도 또한 사후세계에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 믿기 어려운 논문은 사랑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더 탐구해야 한다면서 끝을 맺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수많은 사람들의 “새 죽음-탄생”은 개죽음었다. 솔직히 죽기 직전에 “사랑”을 겪은 사람들이 많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내게는 이전보다 더많은 비난이 돌아왔고 심지어 논문에 충격받은 사람들에게 살해 협박까지 받는 상황에 내몰렸다.
보다 충격스러운 사실은 내가 그 논문을 어느 정도 가능성 있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마자 나는 그나마 실오라기만큼 남아 있던 이 세상에의 삶의 의미를 더이상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논문의 내용에 이끌린 나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는 길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는 길로 들어서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한편으로 남아 있는 내 평생에 그리워했던 그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기엔 충분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던 봄 어느 날 나는 간단한 유언을 작성한 후 아침은 거르고 평소보다 일찍 연구소로 향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아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바로 수많은 실험을 하던 그곳으로 가서 죽음으로 가는 약물을 투입하고 자리에 누웠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
숨이 다하여
내 모든 것이 사라질 때
마지막 소원은
그대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만은
남겨달라는 것이다.
죽음의 형벌이 나를 갈라
온 몸이 찢겨진다 해도
내 눈과 귀와 입귀만은 남겨
다시 만날 때
그대를 진정 느끼길 기도한다.
- 2019년 4월 어느날 꿈꾸듯 쓴 글 중에서
희고 얕은 연기가 온 사방에 가득했다. 겨우 1미터 남짓 앞까지만 시야에 들어올 뿐이었다. 나는 지금 이 곳이 사후세계인지 아니면 버려진 자들의 땅인지 의아해했다. 내가 죽기 직전에 품었던 “그리움”이 사랑으로 인정받은 것인가.
나는 아스팔트 비슷한 길 위에 서있었다. 하지만 어떤 선도 그어져 있지 않았고 아스팔트보다는 약간 부드러운 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검은 그 길 양쪽에도 잡초 같은 풀들이 자라 있었는데 비현실적으로 모두 높이가 비슷했다.
희뿌연한 연기 저 멀리 컴컴한 물체가 서 있었다. 다가가면 갈수록 그것은 어떤 건물로서 높이는 대충 5층 정도로 그 주변엔 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입구엔 문도 없었다. 입구 안으로 들어가는 내 발자국 소리만이 유일하게 나는 소리였다. 깊숙한 내부의 어떤 방에는 수십 열에 이르는 좌석들이 경사지게 빼곡히 차 있었다. 정면에는 커다란 화면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였는데 등장인물의 얼굴이 약간 흐릿해 보였다. 주인공인 데커드와 레이첼이 대화하는 장면 같은데 이 장면은 본 적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영화를 볼 때 자주 앉던 D11 좌석 쯤에 사람이 앉아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내가 지금까지 온 마음으로 그리워한 그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안녕 제이(J).” 그는 친근한 목소리로 내 이니셜을 불렀다. 나는 잠시 목구멍이 꽉 막힌 듯 아무 말도 못하다가 터지듯이 갑자기 말을 뱉었다. “안녕… 정.” … 눈물이 흘러넘치는 걸 걸 억지로 틀어막았다.
“블레이드 러너가 생각보다 재밌네.” 뜬금없이 그가 말했다. 내가 아는 한 정은 SF 장르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앞에 있는 이 여자는 외형만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모습이지만 정신은 다른 이가 차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 벅찬 마음에 어쩔 수 있는 게 없었다.
“데커드가 레플리컨트일까 아닐까?”라고 정이 물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던 그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의구심은 되살아났으나 감격에 사로잡힌 나는 생각 자체를 할 기력조차 없었다. 정이 정말 레플리컨트가 단순히 인조인간 혹은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인간과 똑같은 신체 조건을 갖고 태어났으나 생명이 3년 정도밖에 안되는 실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갑자기 그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익숙한 분 냄새가 났다. 내 뇌는 갑자기 가장 깊은 곳에 묻어 잊혀진 십여 년 전 그 때의 느낌을 소환했다. 마치 내가 끊임없이 찾다가 못찾은 무언가를 드디어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감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천천히 그는 입술을 내 입술에 살짝 대었다 뗐다. 난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얼마만의 재회인가. 그리움과 인내는 마침내 고통을 감내한 만큼 기쁨을 가져다 준다.
“어때? 자기는 내가 예전에 알던 정 같아? 아니면 몸만 정의 몸인 레플리컨트인 것 같아?”라고 그가 느닷없이 물었다. 다시 한번 입술이 다가왔을 땐 더 과감했고 두 혀도 서로를 탐닉했다. 낯설지만 또한 익숙한 느낌으로 온 몸에서 그리움이 물러가고 열정이 솟구치는 것을 나는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였다.
짧은 재회 끝에 그는 또 다시 “제이 당신은 사랑이 어떤 거라고 생각해?”라고 물었다. 내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그이는 스스로 답하고 또 물었다. “젊은이의 눈 속에 있는 사랑, 부모의 희생어린 사랑, 또는 잊혀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랑 이런 것들이 모두 사랑이겠지. 하지만 한 조각이 빠진 것 같지 않아?”
나는 그를 보면서 내가 그리워한 것이 누구였는가라는 혼란에 빠졌다. 그이의 체취를 그리워했는가 아니면 그이의 정신을 그리워했는가. 내 생각을 다 읽고 있다는 듯이 정은 두 눈을 더 크게 뜨고 이렇게 속삭였다.
“난 당신 덕분에 여기 있을 수 있었어. 그건 정말 고마워. 하지만 난 왜 이전 삶의 모습과 달라졌을까? 그건 당신에게 달려 있었어. 고맙고 또 고맙지만 나는 나의 새로운 삶을 또 살아가야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도 그리웠어 당신이…”
갑자기 사방이 환해져서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 속에서 그가 한 “당신이..”이라는 말 끝마디가 흩어지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 몸에 힘들 다 주었으나 오히려 정신이 아늑해졌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건물 밖에 우두커니 서 있었고 여기까지 어떻게 나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뒤에는 내가 들어갔던 건물이 서 있었고 몇 발자국 앞에는 정이 그렇게 서있었다. 살짝 허리를 굽힌 정 앞에는 작은 소년이 서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인데라고 생각했지만 영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전 세상의 기억이 사라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이 잠깐 무슨 얘길 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돌린 정이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다가선 내가 본 그 소년의 얼굴은 마치 데커드와 레이첼의 얼굴을 반씩 섞어놓은 듯 했다. “서로 인사해. 누군지 모르는 것 같은데? 혹시 당신은 이 아이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라고 정이 나지막이 말했다.
갑자기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다. 그리고 잊혀졌던 아니 내가 무의식으로 감추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교통사고였다. 정과 만나 사랑하게 된 지 일 년 가까이 되었던 때였고 아이는 정과 정의 전남편의 아들이었다. 어떤 일로 정은 부산에 일이 있어 내려가 있었고 정의 일이 마무리될 즈음에 내가 아이와 함께 내려가서 세 사람이 뜨거운 여름 막바지를 바다와 함께 식히려 계획했던 것이었다. 밤 늦게 출발한 차는 어두컴컴한 심야에 이유없이 차 옆을 충격한 트럭 때문에 한 번 뒤집혀 도로 밖으로 튕겨 나가버렸다. 난 몇 군데 골절상을 입었지만 아이는 뼈가 심장을 찌르는 바람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
정은 야간에 출발하도록 허락한 자신을 끊임없이 탓하고 트럭 운전사를 죽이겠다고 하고 또 그 상황을 피하지 못하고 혼자만 살아남은 나를 증오하는 눈빛으로 쏘아보는 나날을 계속 보냈다. 나의 팀이 논문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난 어느날 정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몇 시간을 거리를 헤매다가 내게 “정말 아이가 보고 싶어 미치겠어”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어떤 빌딩 옥상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우리는 몇 미터 높이는 될 듯한 커다란 나무 밑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주위는 아무 것도 없는 벌판이었는데 그 나무 이외엔 다른 나무나 식물은 없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보았던 똑같은 높이의 풀들 뿐이었다. 주위가 어두웠는데도 불구하고 나무에선 빛이 났다. 조명이 설치된 것도 아닌데 나무 기둥에서 줄기로 또 줄기에서 가지로 뻗어나가는 사이에서 푸른 끼가 어린 어린 노란 빛이 스며 나왔다. 조금씩 푸른 빛이 더 도는 건 내 착각일까라고 생각했다.
“안녕 아저씨.”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 드디어 익숙하게 다가와 그 아이구나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 아이를 꼭 안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정도 자기 자식을 안지 않았고 손도 꼭 잡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이 두 사람을 계속 지켜보자니 내가 알던 그 사람들이 아닌 것만 같았다. 느낌과 기억의 불일치, 감정과 이성의 불일치가 나를 힘들게 했다.
“이 곳이 새로운 세상인 것 맞아요. 새로운 삶이죠. 지내는 환경이 너무나 달라져서 나의 영혼도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같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움을 계속 지니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 탓했어요. 왜냐하면 이전 세상에 엄마가 있었을 땐 제가 계속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고 엄마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이제 엄마가 여기 온 뒤로는 조금씩 서로 서먹해지고 이젠 머리 속으로만 엄마라는 생각 외에는…” 아이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슬쩍 정에게 나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리는 여기 와서 반쯤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예전의 육체와 체취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머리 속에 남은 이전 세상에 대한 기억은 여기서는 필요가 없어져서. 기억은 점점 잊혀지고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거지." 정이 말했다.
"여기서는 고통도 없고 사건이란 것도 없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전 삶의 기억, 사랑의 기억까지 모두 잊어버리려고 한대. 그런데 나는 마음 속 깊은 데서 이 곳의 평화가 나의 평화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그래도 나는 이 아이를 만나서 좋았어. 이전 세상에서는 이 아이에 대해 고통스럽고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이 곳의 사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 점점 아이에 대한 이전 세상의 기억이 사라지는 게 느껴져. 그래서 결국 아이에 대한 애착이 없어질까봐 두려워. 제이 당신에 대한 기억만큼은 잊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이제 당신이 여기 와버려서 참 아쉬워.”
아이가 물끄러미 앞에 서 있는 나무를 쳐다보다가 문득 일어나서 나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로 나무를 안았는데 모두 다 안지는 못했다. 아이의 표정은 평안해 보였지만 그 표정을 보던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정과 아이 사이의 감정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지켜본다는 게 슬펐고 나도 정, 아이를 사랑하는 감정이 점차 스러져가겠구나 생각하니 무엇보다 슬펐다.
이제 나는 사후세계가 존재함을 알고 그 모습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는지 모르지만 다행이 이 곳에 와서 사랑하던 사람들도 만났다. 또 사후세계의 사랑이 이전 세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는가에 달린 것도 안다. 자식이 죽었는데 부모가 어떻게 살 수가 있느냐는 질문은 예의가 없는 만큼 사랑의 진실을 모르는 것이다. 사후세계에 들어간 이들의 사랑은 이전 세계에서 그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사랑에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죽었거나 헤어졌거나 잊혀진 사람들은 육체는 사후세계로 떠났지만 마음은 그들을 그리워하는 산 자들의 마음 속에 살아남아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영속성이 있었다. 이것을 생각한 나는 잠깐 동안 깨달음의 기쁨을 맛본 후 끝없이 후회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헤아릴 수 없이 슬펐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슬픔이라도 최대한 간직하려 했다.
푸른 나무가 마치 영원처럼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
- 참고 : ‘사후세계’는 넷플릭스 영화 디스커버리(The Discovery, 2017)에서 착안함.
(https://www.netflix.com/kr/title/80115857 )
- 참고 : ‘부모의 자식사랑’ 담당 뇌신경세포 찾았다
(http://www.sedaily.com/NewsView/1RY85E0AXF )
- 2018. 4. 19. 옥탑방책방의 글쓰담 모임에서 1부 발표. 2018. 5. 10. 최종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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