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 유빅 (Ubik)
필립 K. 딕의 [유빅]을 읽었다.
1960년대애 쓴 소설인데 배경이 1990년대이다. 그 때 가정한 미래 90년대는 달과 화성에 기지를 건설할 정도로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초능력이 발현되어 텔레파스, 프리콕 같은 초능력자와 이를 무력화하는 관성자들이 활동하는 세계다. 요즘 유행하는 SF의 개념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딕의 소설이 2010년에 한국에 소개되었다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에도 그 아이디어가 전혀 낡아보이지 않는다. 정말 유명세대로 대단한 창의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은 현실과 반생(half life)이라는 비현실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주 깊이 있는 철학적인 의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과 같이 사이버 세상에서의 삶이 실제 삶과 연결된 세상에서는 또 다른 삶 – 죽음 뒤에도 연장되는 삶이란 것에 관심이 없을 리 없다.
어쨌든 추리 소설 비슷한 형태로 전개되는 중반이 되기 전에는 난해한 어휘에 적응이 쉽지 않지만 작전을 위해 달로 출발한 뒤로는 좀더 흡입력 있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편이다. 마치 추리 소설 같은 형태로 틀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하고.
비현실 세계의 모습은 나름대로 요즘의 시각보다도 더 초현실주의적인 비주얼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60년대에 쓰여진 작품인데도 영화 [인셉션]의 또다른 버전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대단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독특한 주인공은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나름 여주인공 격으로 생각했던 패트가 갑자기 존재감이 사라져버려 조금 놀랐다. 그리고 나중에 설명이 되긴 하지만 유빅이 대단한 의미를 지닌 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좀 허탈하기도 했다. 소설의 관전 포인트는 유빅이나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제조건 자체, 현실과 반(비)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름 딕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시간은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유토피아는 아니었지만.
내 생전에 소설과 같은 인간미가 사라진, 일상사가 온통 기계와 씨름하다가 결국 굴복하는 비참한 세상이 도래하지는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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