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순간에 닥쳐오는 삶의 희열을 생각함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이 중에 태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좀 하고 싶기는 하지만..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병들거나 사고로 또는 노환으로 죽는 건 운명이니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사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살다가 죽는 것이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분리할 수도 없다. 지금 현재에도 우리는 사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

그럼 어떤 부분이 사는 것이고 어떤 부분이 죽어가고 있을까?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나이, 시간과 연관이 있다.
시간이 지나 정점을 거치면 육체는 사는 부분보다 죽는 부분이 더 많아진다.
정신은 어떠한가? 어느 정점을 거치면 죽는 부분보다 사는 부분이 더 커지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정신은 죽을 때까지 고통받거나 고양되거나 현명해지거나 한없이 넓어질 수도 있다.
(물론 한 인간이 세상에 나서 이뤄야 할 것은 내 가정의 행복에서부터 사회적 성공, 인류애적 기여 등등 개인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한 개인이 살면서 죽는 일련의 시간 속에서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정신의 고양이 아닐까.
또한 잠시 빌려쓰는 육체를 잘 다스리는 것은 정신의 고양을 통해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삶이 곧 죽음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지금부터의 남은 모든 시간을 정신을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죽을 때를 예감하는 시간들이 닥치면, 나는 노쇠했지만 깨끗한 육체를 가지고 짧은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 최고의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시간들로 이 세상을 만끽하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닥쳐오는 삶의 희열을 위해..


- Google+ Post : http://goo.gl/ZcE0hD
- 이미지 출처 : Top 15 Photos Of This Morning - 500px.com

Comments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20여 년만에 캐논 IXY 55 (익서스 50) 꺼내들고..

음알못의 오늘의 선곡

2026년 추석 열차표 예매 분투기

Earthseed에 대해 희망을 가질수록 커지는 파멸에의 확신 –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점점 배가 나와서.. 만 보 걷기를 재개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