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세종대왕릉

지난 8일에 큰 딸 서영이가 "세종대왕릉"이란 글을 썼는데요. 오늘밤 한글날에 딸의 글에 달린 엔하위키 미러의 "세종대왕" 편을 정신없이 읽었네요.

세종대왕 - 나무위키

서영이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세종대왕에 대한 글. (딸 자랑 맞습니다.) 엔하위키 미러의 글이라서 야사스러운 게 재밌습니다.
그 중 일부분을 옮겨봅니다. 한글날을 즈음해서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네요.

"그는 족보로 된 임금이 아니다. 전주 이씨의 임금이 아니라 하늘이 낸 임금이었다. 그가 정음을 짓고 모든 책의 언해를 만든 것은 모두 민중을 위한 것이었다. 정말 민족 걱정을 한 이요, 정말 인생 걱정을 한 이다. 어쩌면 그런 어진 마음이 이 역사에도 났을까? 공자가 관중의 역사적 공로를 칭찬하여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가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야!" 하였다지만, 오늘 우리야말로 이 사람이 아니고 그냥 짜 먹자는 그 놈들만이 있었다면 정말 짐승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 함석헌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성인[11]으로서 제도와 시설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 정인지, [훈민정음] 서문 중에서

흔히 상식적으로는 세종대왕이 집현전에다가 "너희들, 새로운 문자를 좀 만들어 봐라." 라고 명령을 해서 집현전에서 뚝딱뚝딱 한글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집현전의 높은 학자들 중에서도 한글을 창제해서 반포하기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한 사람들 중에는 집현전 출신도 많았다. 또한 신숙주 등 젊은 집현전 학자들 몇 명과 함께 만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훈민정음]은 세자과 정의공주 그리고 대군들의 도움을 받아 세종대왕이 주도해서 거의 혼자서 만든 것이고 젊은 집현전 학자들조차 한글창제에선 한 일이 없다. 그렇다면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하면, 세종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을 반포한 후에 집현전 학자들에게 "내가 한글 28자를 만들어 놨으니 그것의 쓰임새와 해설을 좀 달아봐라." 라고 명령한 것이고 그 결과물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세종에서 세(世)자는 '영토를 넓히는 등, 군사적 업적이 뛰어났던 임금'에게 주는 시호라고 한다. 이것은 4군 6진을 개척한 업적을 반영하여 올린 것이다. 원래는 정인지 등이 문종(文宗)으로 묘호를 정하자 하였으나 세종의 장남이 반대하고 4군 6진의 업적이 있으므로 세종으로 묘호를 정해야 해야한다고 주장했으며, 문종의 주장대로 세종은 그렇게 세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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