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 속 헛된 꿈


조개의 깊이


결혼을 한 뒤 그녀는 한 번도 자기의 첫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도 물론 자기의 비밀을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렇잖아도 삶은 살아갈수록 커다란 환멸에 지나지 않았다.
환멸을 짐짓 감추기 위하여 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을 했지만, 끝내 하지 않은 말도 있었다.
환멸은 납가루처럼 몸속에 쌓이고, 하지 못한 말은 가슴속에 암세포로 굳어졌다.

환멸은 어쩔 수 없어도, 말은 언제나 하고 싶었다.
누구에겐가 마음속을 모두 털어놓고 싶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마음놓고 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책을 읽다가 그런 구절이 발견되면 반가워서 밑줄을 긋기도 했고, 말보다 더 분명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자기의 입은 조개처럼 다물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끝없는 환멸 속에서 살다가 끝끝내 자기의 비밀을 간직한 채 그들은 죽었다.
그들이 침묵한 만큼 역사는 가려지고 진리는 숨겨진 셈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는 그들의 삶을 되풀이하면서
그 감춰진 깊이를 가늠해 보고, 이 세상은 한 번쯤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 김광규


2014. 2. 10.  이 시가 표현하는 삶이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삶,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완전 일체감을 느낀다.
내가 "나는 환멸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며 살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사실 지금 '존재'가 나를 규정짓고 있는 것은 참혹한 삶에 대한 환멸이다.

환멸 속에서 희망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아니 사랑이'었'나? 아니면 '사랑'에 대한 관념, 환상이었다. 나는 이제 사랑에 대한 환상마저 접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책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사랑을 꿈꾸는 것이 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관성 속에서 살면서도 관성에서 탈출하길 꿈꾸는 것이 나쁜 것일까?
환멸 속에 빠져 허우적대지만 "한 번쯤 살아볼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꿈이 너무 비현실적일까?
대체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희망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2014. 7. 10.  "감춰진 진리의 깊이"만큼 "세상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느끼고, 삶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면서 "융통성 있게 살아가는 게 최선"이라며 자기자신을 기만하고 산다.
그러면 결국 삶에 대한 환멸은 헛된 꿈을 집어 삼키고 내 삶 전체를 집어삼킬까? 그러긴 싫다. 그래도 "헛된 꿈"에 희망이 있을 것만 같다.


- 이미지 출처 : http://utjeha.wordpress.com/2014/03/15/pricam-ti-kao-pi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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