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을 다 읽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의연한 자세와 에피쿠로스의 자족하는 마음이 가져오는 행복을 배웠고, 세네카로부터는 어떤 불행이라도 흔들리지 않을 고요한 마음, 몽테뉴로부터는 겸손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여러 주제들 중에서 불안한 존재들을 위한 부분은 없습니다만, 책 제목이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라고 꼽힌 부분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그만큼 삶에 대한 믿음이 없고 불안한 상태라는 의미겠죠.
아래에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옮겨 적어봤습니다.


1. 인기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 소크라테스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자신의 실제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중하게 처신하다가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수줍음은 간혹 교만으로, 남의 마음에 들려는 욕망은 아첨으로 오해받는다. 누구나 그런 오해를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그때마다 목구멍은 바짝 타들어가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은 의도했던 것들이 아니기 십상이다. 가혹한 적들은 힘있는 자리에 올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비난하는 말을 한다. 무고한 철학자에게 불공평하게 쏟아지는 혐오에서 우리는, 정의를 실천할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시달리게 될 때 느끼는 고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도 구원의 빛은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직후 그리스 사회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소크라테스는 에우리피데스의 "팔라메데스"를 보던 청중들이 소크라테스의 이름이 언급되는 대목에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보고했고, 디오도로스는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아테네 주민들에게 벌을 받았다고 말했다. (…) 아테네 시가 (…) 소크라테스의 동상을 세웠다고 전한다.
소크라테스는 결국에는 아테네도 자신의 방식에 따라서 사물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그것이 현실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 구원은 참으로 믿기 어렵다. (…) 우리는 지역 배심원들이 적시에 우리를 돕도록 설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후대의 심판이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는 우리로 하여금 옳지 못한 명분을 품게 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거부의 정당한 명분보다는 단순히 거부하는 자세를 미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느냐 않느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당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60~62쪽

성인들의 삶의 마지막에는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소크라테스를 성인이라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 좀 알 것 같네요. 소크라테스가 삶의 마지막을 대한 태도의 영향은 예수의 마지막이 끼친 영향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것에 대한 신념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의견과 충돌할 때 비로서 후대에 깊은 감명과 삶에 대해 사색할 기회를 주어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위적인 충돌과 이에 따르는 엘리트주의는 경계해야지만..) - http://goo.gl/84IkW


2.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 에피쿠로스

행복, 에피쿠로스의 구매 리스트.

1) 우정
"먹거나 마시기 전에,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조심스레 고려해보라.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 에피쿠로스, 세네카의 [서한집]

2) 자유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에게 치욕을 안겨줄지도 모르는 변덕스러운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 위해서 아테네 상업 세계의 고용관계에서 자신들을 제외시키고(“우리는 일상과 정치라는 감옥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독립을 누리는 대가로 보다 검소한 생활방식을 택하면서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3) 사색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삶이 지속되지 않을 죽음 이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서한]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79~86쪽.


3.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 세네카

이를테면 발을 밟히는 것에서부터 뜻하지 않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좌절의 영역은 엄청나게 넓을 수 있지만, 모든 좌절의 핵심에는 우리의 희망과, 그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 사이에 빚어지는 갈등이라는 기본적인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

세네카의 저작 전편을 살펴보면 한 가지 관념이 되풀이해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우리 인간은 평소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또 납득할 수 있는 좌절에 봉착할 경우에는 잘 참아넘기는 반면, 예상하지 못한 좌절을 겪으면 엄청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철학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세계의 진정한 모습과 조화를 이루게 하고, 좌절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런 좌절에 수반되는 유해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어야 한다.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111~112쪽.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그토록 부지런히 모색하는 정신의 활동은 무척 멈추기가 어렵다. 정신의 활동은 심지어 더 이상을 현실을 개조할 희망이 없을 때에도 끊임없이 변화와 진보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 그러나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현실을 자유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 상황과, 변화 불가능한 현실을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황을 올바르게 구분하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세네카는 말한다.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144쪽.

우리 인간과 사슬에 묶인 개 사이에 제아무리 비슷한 점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결정적인 이점이 하나 있다. (…) 우리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어서 마차가 갈 길을 정확히 이론화할 수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물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자신과 숙명 사이의 느슨한 관계를 적절히 확보함으로써 자유를 증대시킬 수 있다. (…) 우리 인간에게는 어떤 사건들을 바꿀 만한 힘은 없더라도, 그 사건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주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고유한 자유를 발견하는 것은 숙명을 자발적으로 수용할 때이다.

세네카는 네로로부터달아날 수는 없었다.
살인마 황제가 변덕을 부리면, 언제라도 목숨이 달아날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자연의 장관에서 크나큰 위안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의미있을 것이다. (…) 이 우주에는 우리의 희망에는 철저히 무관심한 힘들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 인간이 복종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숙명에 관해서 고상한 교훈을 던지는 것은 자연이다.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147~150쪽.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것을." - 세네카,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152쪽.


4.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 몽테뉴

"(우리가 그렇게 높이 칭송하고, 또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우리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는) 이성이 인간에게 있는 것은 우리를 고문하기 위해서라고 감히 결론 내려도 괜찮을까? 만약 우리가 지식을 얻게 된 결과, 그것을 얻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평정과 안식을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이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더 열악하게 만든다면, 지식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몽테뉴, [수상록 I].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 강조는 제가 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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