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행복론


사랑이 올 때는 두 팔 벌려 안고
갈 때는 노래 하나 가슴속에 묻어놓을 것
추우면 몸을 최대한 웅크릴 것
남이 닦아논 길로만 다니되
수상한 곳엔 그림자도 비추지 말며
자신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 것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아예 하지도 말며
확실한 쓸모가 없는 건 배우지 말고
특히 시는 절대로 읽지도 쓰지도 말 것
지나간 일은 모두 잊어버리되
엎질러진 물도 잘 추스려 훔치고
네 자신을 용서하듯 다른 이를 기꺼이 용서할 것

내일은 또 다른 시시한 해가 떠오르리라 믿으며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 세월을
보상할 수도 있다고, 정말로 그렇게 믿을 것
그러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

- 최영미


시는 전반적으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안전하게 살고 둥글둥글하게 살라는 충고를 하고 있지만, 마지막 연에서는 새롭게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겠냐는 희망을 내비치기도 한다.
또 "인생은 짧고 하루는 길더라"라는 말에서 긴 고생 끝에 행복이 찾아올 거라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하루 하루를 뜻깊에 내야 함을, "잘 보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보낸 십년을 보상할 수도 있다는 믿음"에서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뜻깊게 보내면 기대하지도 않았던 삶의 기쁨이 초대하지 않는 손님처럼 올 것이라는 희먕을 보았다.


-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창작과 비평.1998)
- 출처 : http://cafe.daum.net/baramjewildflower/4HPM/4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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